그동안 숨겼던 해외 소득이나 재산을 통해 발생한 세금을 자발적으로 신고·납부했더라도 가산세 면제 등의 조치가 이제는 주어지지 않는다. 어제(3월31일)부로 '미신고 역외소득·재산'의 자진신고기한이 마감됐기 때문이다.

단 한번뿐인 기회를 외면한 '조세범죄자'는 향후 외국과의 조세정보교환을 통해 낱낱이 공개되는 과세자료로 국세청의 세무조사 칼날에선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반면, 세금회피를 일삼았으나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납세를 결심한 이들은 검증작업이 마무리 된 이후에 신고한 소득 또는 재산과 관련된 세법상 가산세와 과태료를 모두 면제받거나 조세범 딱지도 떼어낼 수 있다.

역외소득 찾아 떠난 6개월의 여정

소득이나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는 조세회피 수법은 변칙적인 자금관리 등을 통해 날이 갈수록 지능화했으나, 과세당국은 정보접근의 한계로 역외 세원을 양성화시키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에 정부는 미국과의 '조세정보자동교환협정(FATCA)'을 비롯해 영국·홍콩 등 90여개 국가와 다자간 금융정보자동교환협정을 체결하면서 역외 세원을 양성화하기 위한 발 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다만 본격적인 역외탈세 추적에 나서기 앞서, 다시는 없을 '기회'를 부여하기로 했는데 그것이 '미신고 역외소득 자진신고제도'다. 자진신고기한은 지난해 10월1일부터 지난달 말까지 6개월 동안으로 정했다. 정부는 이 기간 내에 신고하지 않았던 세금을 자발적으로 납부하면 가산세·과태료 등의 면제혜택을 비롯해 형사상 관용조치를 해주겠다는 회유책을 내놨다. 

이 제도가 최초로 시행되는 만큼 효과적인 추진을 위해 '역외소득·재산 자진신고기획단'도 출범시키면서, 자진신고 대상자들에게 제도도입 배경이나 취지 등을 설명하는 움직임도 빠르게 진행됐다. 

실제 세무대리업계를 대상으로 한 심층교육을 시작으로 사업가(자산가)들의 거주 비중이 높은 해외로 직접 찾아가 신고대상이 기준점이 되는 거주자 판정 여부에 대한 설명도 이루어졌다. 더욱이 서울시내 주요간선도로를 운행하는 버스와 해외 출국자들이 빈번하게 이용하는 도심공항 터미널 전광판에 자진신고 제도를 안내하는 광고를 시행하기도 했다. 

이 같은 조치로 자진신고기한이 마감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면제혜택을 받게 된 사례까지 등장했다. 앞서 지난달 기재부는 16건(개인 13건, 법인 3건)의 역외소득·자진신고에 대해 최초로 과태료(가산세 등) 면제자를 확정지으면서 이들에게 면제혜택을 통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세금신고 현장의 분위기는 어땠나

자진신고제는 앞서 미국, 영국, 호주 등 15개 국가에서 시행했는데, 우리나라와 경제 규모가 비슷한 호주의 경우 신고기한을 1달 남겨놓고 세금신고가 집중된 바 있다. 우리나라도 마감 날이 임박할수록 자진신고 규모가 늘어나면서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신고기한 마지막 주인 지난달 28일을 기점으로 자진신고 대상자들의 세금신고 문의가 급증하면서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는 후문까지 들리고 있다. 자진신고의 마감시간이 임박한 영향도 있었으나, 3월 법인세 신고기한과 맞물려 있는 상황이다 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국세청에 직접 찾아가 신고서류를 제출한 이들은 찾아볼 수 없었고, 담당부서에는 박스만 수북이 쌓여져 있다는 전언이다. 서울지방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신고를 직접 찾아와서 하는 사람은 거의 드물었다"며 "대부분 박스형태의 우편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자신신고 기간 내에 직접 또는 우편으로 납세지 관할 지방국세청에 신고서류를 제출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방문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여느 세목의 신고와는 달리 현장의 체감도는 낮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굵직한 기업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의 모 세무서에 접수된 신고 건수는 없었으며, 서울지역의 일부 세무서의 신고건수도 거의 없는 수준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자신신고 기한은 어제로 마감 됐으나 3월31일자 소인이 찍힌 우편까지는 허용되기 때문에 다음주나 돼서야 신고집계현황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서울지역의 세무서 관계자는 "오늘(3월31일)도 신고서와 접수 안내하는 전화를 많이 받고 있다"며 "조금 시간이 지난 다음에 공식적인 집계가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남은 건 '현미경 검증'…호주만큼 걷혔을까

세법에 정해진 기한 내에 신고했더라도 끝이 아니다. 소득이나 재산을 비롯해 세금신고 대상 연도에 따라 세율을 적용해 세금을 신고했으나, 자료의 누락이나 오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성실납부'를 했는지의 판단여부 절차가 남아 있다.

이 같은 사후검증 과정을 거치고 나서 신고세액을 조정한 사항을 납세자들에게 두 달 안에 부과고지하게 된다.

김경희 자진신고기획단 부단장은 "본인들이 알아서 신고를 했기 때문에 세율을 잘못 적용 했다든지 그런 부분을 조정하는 과정이 남았다"며 "조정된 사항은 두 달 안에 부과고지를 하고, 이자나 배당소득의 세금과 같은 간단한 사항은 빠르게 진행해서 면제통지를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관심은 자진신고제가 어느 정도 성과를 냈느냐의 여부다. 현재까지 자진신고제를 통해 우리 정부가 거둬들일 세수효과는 발표된 바 있다. 쉽게 말해 자진신고제의 성과의 기준점이 없다는 소리다.

다만, 정부 자체적으로 제도 성과에 대한 기준점은 없으나, 우리나라와 경제 규모가 비슷한 호주와 비교해서 성과를 논하는 목소리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호주가 자진신고제 시행으로 6억 호주달러(약 5000억원)의 세수를 거둬들였다는 점을 근거로, 이에 상응하는 세수증대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세무대리업계에 공공연하게 퍼져 있는 부정적인 시선은 사그라 들지 않고 있다. 대체적으로 역외탈세 추적 역량이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상황에서 은닉재산을 신고할 가능성은 낮다는 목소리다.   

모 세무법인 관계자는 "이제까지 역외소득 자진신고는 1건 했다"며 "역외에 은닉재산의 규모를 알기 힘들기 때문에 신고를 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세무사 역시 "우리 쪽으로 들어온 자진신고 건수는 없었다"면서 오히려 '자진신고 그거 할 거 같냐'고 되묻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