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업계 "탁상행정…소송 증가·감사품질 하락 우려"
금융감독원 "의견 수렴 중, 시행시기 연기 가능"

금융감독원이 부실회계감사가 발생하면 회계법인 대표에 대해서도 직무정지 등의 제재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회계업계가 "현실에 맞지 않는 탁상행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회계업계는 회계법인 대표에 대한 징계에 반대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금융당국에 전달한데 이어 이 정책이 시행될 경우 법적인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2월 1일 대우조선해양 등 수주산업의 분식회계와 부실감사 의혹으로 인한 부작용이 심각하다고 판단하고 회계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분식회계에 책임있는 회계법인 대표 및 회사 감사 등에 대해서도 직무정지와 해임권고 등 엄중 제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업무담당자만 제재하면 분식회계와 부실감사를 근절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표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의도이다. 

금감원은 의견수렴 과정과 규제개혁위원회 심의를 거쳐 2월 개정 이후 발행되는 감사보고서(재무제표)부터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회계업계는 금융당국의 이번 정책이 회계업계의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며 제도가 시행되면 회계법인들이 더욱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빅4 회계법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회계법인들이 독립채산제로 운영되고 있다"며 "각 파트너들이 내놓은 보고서에 대해 대표가 일일이 관여할 수 없는 점을 무시한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부실감사를 사전에 막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업계 실정을 무시한 행정편의적인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A회계법인 대표는 "회계법인 대표에 대해 직무정지 등의 징계가 이뤄지면 시장에서 퇴출될 수 있다"며 "이같은 정책은 회계법인을 접으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거세게 비판했다.

그는 또 회계법인에 대한 소송도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최근 분식회계 사건이 발생하면 회계법인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이 줄을 잇고 있다"며 "금융당국이 회계법인 대표를 징계할 경우 소송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고 이를 악용한 소송도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회계법인 대표에 대한 징계가 오히려 감사품질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B회계법인 대표는 "회계법인 대표에 대한 책임을 강화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대표에 대한 징계가 이뤄질 경우 대표직을 서로 기피할 것"이라며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면 실력이나 전문성이 떨어진 사람이 대표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경우 회계품질관리가 더 어려워지고 결국 회계업계는 물론 자본시장 전체가 피해를 입게된다는 것이다. 

학계도 당국의 이번 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오문성 한영여자대학교 세무회계학과 교수는 "감사실패의 1차적 책임은 기업에 있다"며 "기업보다 회계법인을 옥죄는 방법으로 분식회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부작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와 관련 "정책을 수립하기 전에 회계법인 대표이사 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업계 의견을 들었다"며 "현재 외감법 시행세칙 개정에 대해 의견을 수렴 중이고 제도 시행시기도 준비기간 부여 등으로 연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회계업계는 감사실패에 대한 대표이사 징계를 반대하는 성명서를 작성해 금융당국에 전달했다. 또 외감법 시행세칙이 개정되고 실제 정책이 시행될 경우 위헌소송 제기에 대해서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