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대학세무사회(이하 세세회)의 포럼이 열린 지난 6일, 서초동 베라체웨딩홀은 포럼을 축하하기 위해 각지에서 보내온 화환들로 가득했다.

허례허식(虛禮虛飾)이라는 부정적 시각도 있지만 근사하게 축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동시에 행사 주최 측의 위상도 높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애용하는 화환.

하지만 이날 세세회 포럼장에 한국세무사회에서 보내온 화환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정구정 세무사회장이 보낸 화환이 없었다.

평소 경조사는 물론 크고 작은 세무사 회원들의 모임을 치밀하게 챙기는 정 회장이 다수의 회원들이 속해 있는 세세회 행사에 그 흔한 화환조차 보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과중한 업무로 인해, 미처 챙기기 힘들었던 것일까? 아니면 세세회가 정 회장에게 단단히 미운털이 박혔기 때문인 것일까?

굳이 이 중 답을 고른다면 후자에 무게중심이 쏠리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 세무사회장 선거 당시 벌어졌던 '사건'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세무사회장 선거를 앞둔 지난해 2월, 세세회는 정구정 회장의 3선을 위한 회칙해석 추진을 강력히 반대한 바 있다. 당시 세세회는 회칙개정 및 회칙해석의 중요사항인 회장 중임제한 규정은 너무나 명백한 내용으로 해석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세무사회장은 평생 딱 2번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세세회의 입장은 전혀 관철되지 않았고, 오히려 세무사회 임원으로 활동하던 세세회 회원들만 줄줄이 해임되는 참사가 벌어졌다. 가뜩이나 분열돼 있던 세무사회를 산산조각 낸 사건이었으며, 반(反) 정구정 정서를 갖고 있는 세무사들의 마음에 뜨거운 기름을 부은 사건이었다.

고작 화환 하나 보내지 않았다고 이런 식으로까지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작은 부분 조차 의미심장하게 보이도록 만들고 있는 것은 세무사 업계가 처해 있는 '분열'이라는 현실 때문이다.    

비단 세세회만이 아니다. 서울세무사회, 중부세무사회, 세무사고시회를 비롯해 몇몇 지역세무사회까지 현 한국세무사회 집행부와 철저히 등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작년 6월 3선에 성공한 정 회장이 회원들을 향해 큰절을 올리는 모습이 아직 생생하다.

당시 정 회장은 "지금 드린 큰절은 감사와 더불어 용서를 구하는 절이다. 회원의 화합과 통합을 이끌었어야 했는데 나로 인해 갈등과 분열을 일으킨 것에 대해 상당한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앞으로 세무사회를 강한 조직으로 만들고 화합과 단합을 이루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정 회장의 약속은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전자세액공제 제도의 존폐를 놓고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던 지난해 연말, 정 회장은 지나가던 기자를 붙잡고 서서 "세무사고시회에서 회원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다. 세무사회의 공을 가로채려 한다"며 울분을 토해 냈다.

국회의원실이 주최한 세제개편안 간담회에 참석한 안연환 고시회장과 구재이 부회장이 조세소위 의원들을 설득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데, 고시회 신문 1면에 떡하니 게재하고 각종 조세전문지에 보도자료를 배포했다는 것이 정 회장이 그토록 원통해하던 이유였다. 

이어 그는 노골적으로 실명까지 거론하며 "000가 그런 것 다 알고 있다. 자기들이 뭘 했나. 공을 이런 식으로 가로채는 것은 아니다"라며 고시회를 비난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최근 세무사회의 한 임원이 서울세무사회 임원에게 '횡령'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회원게시판에 글을 게재, 서울세무사회원은 물론 반(反) 집행부 뜻을 가진 회원들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되기도 했다.

아울러 세무사회관 대강당을 고시회 등에는 내주지 않는 점을 문제 삼는 글들이 게재되기도 했다. 좌우 이념대결로 서로 물고 뜯는 정치판 보다 더 극심한 갈등과 분열이 세무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일에는 우선순위라는 것이 존재한다.

'공익재단'을 제대로 키우겠다며 회원들로부터 기부금을 재촉하는 일이 당장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세무사 업계의 분열을 봉합하고 화합을 이끌어 내는 일보다 우선순위에 있는 것인지 정 회장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공익재단 이사장으로 임기 4년을 스스로 보장한 정 회장에게 공익재단을 키울 시간은 충분히 주어져 있다. 하지만 세무사회장으로서 업계의 화합을 이끌어 내야 할 시간은 1년여 밖에 남지 않았다.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있을 지언정, 반대편에 서 있는 그 누구도 한 사람의 세무사회원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들을 끌어안고 상생의 길을 가도록 유도하는 일이 공익재단을 키우는 일보다 더욱 값지고 업계 발전을 위해 정 회장이 해야 할 일이다.

회장 당선 직후, 넙죽 큰절을 올리며 했던 말을 정 회장이 아직 잊지 않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