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이기 때문에 무조건 보호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라고 볼 수 없다. 만일 이렇게 될 경우 (소비자의)기대치가 높아지고 이에 못 미치면 결국 불만이나 민원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A생명보험회사의 한 임원은 29일 '금융 소비자 보호'를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최근 금융계 쟁점이 되고 있는 블랙 컨슈머(Black consumer)를 직접적으로 공격한 말이다.

블랙 컨슈머는 실제로 가입한 금융 상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막무가내로 환불을 요구하거나,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한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이 임원은 "금감원에서 2년 안에 민원을 50% 감축하라고 했는데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불완전 판매 비중이 높고 민원 건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보험회사의 현실을 볼 때 이러한 말은 소비자의 공감을 얻기 어려워 보인다.

보험회사 민원 건수는 금융권 전체의 절반에 육박한다. 상품의 특성상 장기 계약이 많고 중도 해지에 따른 손해가 커 블랙 컨슈머뿐 아니라 선량한 가입자의 피해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이러한 이유로 보험 상품은 지능적 사기에 빈번하게 악용되기도 한다.

금융 당국과 경찰의 기획 조사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적발된 보험 사기꾼은 4만54명(9월 기준)에 달했다. 적발 금액은 2237억원으로 집계됐다. 1년 만에 각각 12.1%, 11.3%가 증가한 수치다.

보험 사기는 지난 2010년 상반기 1641억1200만원에서 2011년 같은 기간 2009억6400만원, 지난해 2236억9700만원으로 꾸준히 증가해왔다.

보험회사들은 보험 사기 때문에 해마다 손실이 늘고 있다고 울상이지만 사실 이 같은 비극을 초래한 것은 보험회사들 스스로도 큰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보험 설계사 영업을 앞세워 가입 유치 경쟁을 벌이면서 불필요한 보험 상품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보험 사기꾼 직업을 보면 무직이나 일용직이 1만621명(26.5%)으로 가장 많지만, 회사원(7148명)과 자영업 종사자(3589명) 등 경제활동을 하는 일반인도 적지 않다.

금감원 관계자는 "불필요한 보험 가입이 많아지면서 '보험금 못타면 바보'라는 인식이 일반인들 사이에도 팽배해, 범죄에 대한 도덕적 책임이 무뎌진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필요 이상으로 지출되는 보험료 때문에 소위 '본전'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금융은 서비스산업 중 하나이다. 특히 보험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고에 대비해 투자하는, 일종의 무형의 상품을 구매하는 거래이다.

보험회사 임원이 블랙 컨슈머를 탓하고 금융 당국이 보험 사기를 추적하느라 행정력을 낭비하기 전에, 보험회사들은 반드시 필요한 소비자에게 보험 상품을 제대로 가입시키는 서비스 마인드를 갖추는 게 우선시돼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