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 정부의 정상 출범을 막아 온 세 가지 법이 있다. 국회선진화법, 인사청문회법, 그리고 백지신탁을 규정한 공직자윤리법이 그들이다.
 
어느새 '부메랑 3법'이란 별명이 붙었다. 이 3법을 만든 장본인들이 바로 박근혜대통령과 새누리당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국회 과반수 의석을 갖고서도 정부조직법 협상에서 47일 동안 끌려 다닐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국회선진화법 때문이었다. 폭력국회를 방지하기 위해 과반수 정당의 직권상정을 막은 이 법은 지난해 4월 새누리당의 총선 공약이었다.
 
국무총리를 비롯한 장관 후보자들이 줄줄이 낙마하고, 지명된 장관 후보자들이 아직도 '후보자'딱지를 떼지 못하고 있는 이유 또한 개정된 인사청문회법 때문이다. 청문회 대상을 총리에서 전 국무위원과 공정위원장 금감위원장 방송통신위원장 등으로 확대한 인사청문회법 개정안도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이 지난 2005년 발의한 것이다.
 
박 대통령이 야심차게 발탁한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후보자가 중도하차한 이유는 고위 공직을 맡으면 관련 주식을 모두 팔아야 하는 주식백지신탁제도 때문이었다. 
 
'천막당사' 시절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2005년 4․15총선 직전 "자산 백지신탁을 반드시 도입해 국회의원을 포함해 고위공직자가 지위를 이용해 재산을 불리는 일을 원천적으로 막겠다"고 국민 앞에 '실천약속'으로 다짐했었다. 약속한 자산 백지신탁 가운데 주식백지신탁만 그 해 4월 공직자윤리법 개정으로 제도화된 상태다.
 
자신들이 만든 법에 스스로 발목이 잡히자 개정논의가 여기저기서 불거져 나오고 있다. 인사청문회가 '신상 털기'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도덕성검증을 비공개로하자'는 개선안이 여권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야당이 국회선진화법을 악용하는 사례가 너무 빈번하다"며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선진화법 개정논의에 불을 지피는가 하면,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내정자가 주식백지신탁을 이유로 사임하자 여권 내에서 이 제도의 개정논의 또한 탄력을 받고 있다.
 
모든 법이 완벽할 수는 없고, 아무리 도입취지가 좋아도 시행과정에서 문제점과 부작용이 드러나면 여야합의로 얼마든지 개정할 수 있다. 문제는 실행에 최선을 다해보지도 않고 절차상의 불편을 제도 탓으로 돌리는 무책임한 행태다.
 
인사청문회제도는 대통령이 지명한 고위공직자가 제대로 자격을 갖췄는지 공식임명 전에 국회에서 검증받는 제도로, 행정부를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다. 2000년 6월 김대중 정부 때부터 시작됐고, 2003년과 2005년, 2012년 세 차례에 걸쳐 그 대상자가 확대되어왔다.
 
검증이 너무 혹독하다는 비판도 적지 않지만 대다수 후보자들이 통과됐고, 12년여의 역사가 쌓이면서 공직사회에 대한 경종과 함께 고위공직 꿈나무들에게 자기관리의 필요성을 일찌감치 깨우쳐주는 사회 교훈적 역할도 톡톡히 해왔다.
 
문제는 청와대의 사전검증소홀에 있다. 청문회제도의 '원조'라는 미국의 경우 매뉴얼에 따라 233개 항목에 걸쳐 사전검증이 이루어지고, 이 과정에서 거짓말이 드러나면 징역 5년형의 형사처벌을 받는다. 청와대의 사전 검증과정에서 도덕성 문제가 걸러진다면 국회청문회에서는 정책능력 중심으로 검증이 가능하다.
 
12년 된 제도를 지금 와서 무력화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검증을 강화해야한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 청문회기간이 20일이라고 하지만 서류를 제출받아 실제 청문회를 갖는 기간은 3일에 불과하다.

거짓말과 위증에 대한 처벌조항이 없어 국회증인보다 더 허술하고, 증인이나 참고인은 본인이 안 나오면 그만이다. 문제가 드러나면 임명권자의 입만 쳐다보지 말고 국회의장이 임명동의안을 철회할 수 있어야한다는 주장까지 고개를 드는 상황이다.
 
18대 국회 막바지에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 이른바 국회 선진화법은 다수당의 독주를 막고 여야 간 이견 발생 시 안건 조정장치를 마련해 몸싸움과 날치기처리를 방지한다는 의미에서 '선진화'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새누리당이 4.11총선에서 다수당이 못될 것 같아 야당의 발목을 잡기위해 만든 법이 오히려 새누리당 발목을 잡고 있다는 우스개도 나돈다. 막상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과반수가 넘는 승리를 거두자 당내에서 선진화법 불가론이 제기됐고, 당시 비대위원장이었던 박대통령이 "18대 국회가 끝나기 전에 선진화법을 꼭 처리해야한다"고 교통정리를 한 바 있다.
 
과반의석을 보유한 새누리당이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지연에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과거처럼 단독처리에 나서지 못하고 '식물국회'를 방치한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여야 합의 없이는 어떠한 법안도 통과시킬 수 없게 돼 '야당의 국정 발목잡기가 제도화'됐고,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다수결 원칙'을 훼손한다는 반론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정부조직법개정안 표류에 따른 국정파행사태는 여야지도부의 정치력 부재가 그 본질이지 국회선진화법을 탓하는 것은 무리다. 장관임명은 대통령의 권한이지만 그 근거가 되는 정부조직법 개정은 국회의 권한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야당에 미리 개편안을 설명해 협조를 구하고, 필요한 경우 야당과 타협점을 찾는 포용적인 자세를 가졌어야 했다.
 
국회선진화법은 역설적으로 새누리당이 소수야당이 됐을 경우 다수당의 독주를 견제하기위해서도 필요하다. 대화와 타협의 의회정치가 뿌리내리려면 서로 간에 인내가 필요하다. 
 
공직자윤리법상 백지신탁제도는 공직자가 직위를 이용해 자기가 보유한 주식이나 채권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책입안이나 법집행을 못하도록 하기 위해 마련됐다.
 
보유중인 3000만원어치 이상 주식은 직무 관련성이 없다고 결정한 때를 제외하고는 모두 매각 또는 제3의 기관에 신탁해야한다. 신탁기관은 해당 주식을 신탁일로부터 60일 이내에 매각해야하고 매각대금도 본인과 무관하게 운용된다.
 
공직에 봉사하기위해 평생 피 땀 흘려 일군 기업의 경영권을 포기할 기업인은 흔치않다.   공직자윤리법 취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능력 있는 기업인들이 공직에 참여해 국가경제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은 필요해 보인다.
 
보완책으로 공직퇴임 시 보관했던 주식을 돌려주고 수익금은 사회 환원 또는 국가에 기부하는 '보관신탁'을 추가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차제에 주식백지신탁에서 고위 공직자의 직무관련성을 더 넓게 잡고, 실수요 이외 목적으로 보유하는 부동산도 백지신탁에 추가시키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하다. 
 
여야는 언제든 바뀔 수가 있다. 현재 처한 입장과 일시적 유․ 불리에 따라 제도나 법을 바꾸려든다면 이야말로 원칙과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다. 대의(大義)를 좇아 초심으로 돌아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