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조직법 처리 지연...당 내부 "정치력 부재" 비판
朴 대통령·황우여 적극 주장..."이제 와서 바꾸자니 말 안 돼"

새누리당이 정부조직법 처리 지연이 '국회선진화법' 탓이라며 개정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과 관련해 결국 '직권상정'의 길을 열어두려는 것이라는 지적과 함께 '누워서 침 뱉기'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회선진화법은 다수당의 일방적인 날치기와 몸싸움을 방지하기 위해 '여야 합의' 법안 통과를 원칙으로 삼고 있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천재지변이나 전시·사변 등 국가 비상사태의 경우로 제한하고 처리가 지연되는 안건은 재적의원 5분의 3이상 동의로 신속처리 법안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녹록치 않은 현실을 이유로 개정 주장을 하면서 법 취지를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7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목소리로 국회선진화법 개정을 주장했다. 

■ "선진화법, 국회 식물로 만들어…하수구 없는 부엌" = 심재철 최고위원은 "국회선진화법은 한마디로 소수파의 발목잡기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소수파 발목잡기법'"이라며 "두고두고 국회를 식물로 만드는 법이고 자승자박하는 법이다. 당연히 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기준 최고위원도 "선진화법의 좋은 취지와 달리 정부조직법 사태처럼 국회가 일하고 싶어도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하는 '코마상태'(혼수상태)에 빠트렸다"며 "국회 선진화법은 국회 코마법이 됐다"고 비판했다.

김기현 원내수석부대표 역시 이날 CBS 라디오에 나와 "국회선진화법 개정 논의를 추진해야 한다"며 "(지금과 같은) 이런 형태의 정치문화를 만들어가는 상황은 국회를 식물화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표결을 반드시 보장하는 제도로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6선의 이인제 의원도 평화방송 라디오를 통해 국회 선진화법에 대해 "하수구가 없는 부엌과도 같은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이 의원은 "선진화법은 아주 잘못된 것이 법으로 다수결의 원리 자체를 봉쇄해버렸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당 지도부의 이 같은 개정 목소리에 당 내부에서도 "여당의 정치력 부재"를 지적하며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국회선진화법이 지난 해 19대 총선 직후 개원한 5월 국회에서 새누리당의 주도로 통과된 법안이기 때문이다. 이에 당시 원내대표로 법안 통과를 주도했던 황우여 대표의 입장 역시 난처하게 됐다.

■ 국회선진화법, '박근혜 비대위 체제'의 산물…당 내부서도 "말 안 돼" = 국회선진화법의 탄생은 2011년 10.26 서울시장 재보선 패배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으며 2012년 총·대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던 때로부터 시작된다.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위기 극복을 위해 '박근혜 비상대책위 체제'를 가동했고, "뼈를 깎는 쇄신"을 외쳤던 쇄신파 의원들과 당시 비대위원이자 원내대표였던 황우여 대표가 주도해 선진화법 통과를 이끌었다. 비대위원장이던 박근혜 대통령 역시 선진화법 통과를 강력히 촉구한 바 있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예산안 날치기 통과와 폭력 국회 등으로 여당에 대한 여론이 안 좋아지자, 쇄신차원에서 선진화법을 내놓은 것이었다. 때문에 이 같은 개정 목소리가 '누워서 침 뱉기'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선진화법 개정, 결국 단독처리…물리력 없으면 일 못한다는 꼴" = 새누리당 '개혁파'인 김성태 의원은 <조세일보>와의 통화에서 "정치력 부재로 인한 것으로, 할 도리가 아니다"라며 "결국 물리력을 동원하지 않고는 일을 못한다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이어 "과거의 틀과 의식을 깨지 못해 협상이 봉착됐다고 본다"며 "어떤 식으로든 여당이 협상력을 발휘해 민주당의 출구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들은 우리가 무지막지하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 전략기획 측 한 관계자도 "결국 단독처리를 하겠다는 것인데, 그대로 가야지 개정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당시 선진화법을 만들 때 '무리'라는 지적이 있었지만 어쨌든 여야 합의로 통과를 시켰고 주도하지 않았느냐"며 "근데 이제 와서 우리가 힘드니까 바꾸자고 하는 것을 누가 납득하겠느냐"고 말했다.

핵심 고위 당직자는 "정부조직법 처리가 잘 안되니까 화김에 다들 그러는 것"이라며 "개정하고 싶어도 야당이 합의 안하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정치평론가인 신율 명지대 교수 역시 기자와의 통화에서 "정부조직법 같은 일은 앞으로 비일비재 할 텐데 그 때마다 법을 고치자고 할 것인가. 미국도 유사한 사례는 많다"며 "이번 기회로 정치력을 키워나갈 때"라고 꼬집었다.

이어 "자신들이 답답하니까 개정하자고 하는 건데, 아무리 그래도 개정하자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 민주당 "'직권상정의 추억', '날치기의 향수'를 잊지 못해" 비난 = 국회선진화법 개정 목소리가 높아지자, 민주통합당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박용진 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을 통해 "새누리당이 '직권상정의 추억', '날치기의 향수'를 잊지 못하고 국회선진화법이 묶어놓은 '다수당의 횡포'에 대한 금단현상으로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라고 힐난했다.

이어 "몸싸움 국회, 막장국회라는 국민 비판 앞에 여야합의로 개정한 국회선진화법을 제대로 시행도 해보지 않고 법 개정의 속내를 드러내는 것은 자신들의 정치력 부재를 법의 문제로 돌리려는 얄팍한 꼼수"라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