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0~2세 영아에 대한 전면 무상보육이 시행 넉 달 만에 중단 위기를 맞고 있다. 부자동네와 섬마을을 가리지 않고 지방자치단체들의 보육예산이 속속 바닥나고 있는 데다 국가예산도 11월을 넘기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보육시설에 아이를 맡길 때 돈을 지원하는 보육비는 지난해까지는 소득 하위 70% 계층에게만 지원됐었다. 올해부터는 모든 소득계층으로 확대되면서 어린이집에 다니는 0~2세 아기는 30% 이상 급증했다.

집에서 아이를 키우던 사람들도 '아이를 맡기지 않으면 손해 본다'는 심리가 작용하면서 너도나도 맡기다 보니 지자체보육예산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서울 서초구의 경우 오는 8월부터 무상보육을 중단하겠다며 맨 먼저 백기를 들었다.

서울 강남구와 종로구 등 총 11개 자치구의 무상보육 관련 예산이 다음 달 내 소진되고, 인천은 9월, 대전 광주 경기 충북도 등 전국 200여개 지자체는 10월 중 관련 예산이 바닥난다고 아우성들이다. 

0~2세 무상보육 실시에 추가로 소요되는 돈은 지방자치단체 6200억원, 중앙정부 2400억원으로 추정된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어떤 일이 있어도 보육서비스가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마련하겠다"고 다짐했지만 해법은 쉽지 않아 보인다.

충분한 준비 없이 정책을 강행한 여당, 원칙만 앞세우는 정부, 정부만 바라보는 지자체들 간에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 0~2세 아이를 키우는 전 계층에 차등 없이 보육료를 지원하는 정책은 새누리당의 핵심 총선 공약이다. 무상보육은 당초 민주통합당이 제기해 온 의제였지만, 새누리당이 작년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한 뒤 작년 말 국회 예산심의에서 '0~2세'와 '5세' 무상보육 예산이 전격 반영됐다.  

무상보육은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2010년 말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내세운 이후 4.11 총선공약으로 채택됐다. 새누리당은 지난해 말 이에 필요한 보육비 3697억원을 증액한 예산안을 주도적으로 통과시켰다.  

총선국면에서는 이를 더욱 확대해 '2013년부터 0~5세 전 계층에 양육비를 지원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자택에서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 지원하는 양육비는 0~2세 차상위 계층(소득 하위 15%)에게만 주어왔다.

박 전 위원장이 직접 나서 무상보육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가족행복 5대 약속'의 일환으로  내년부터 만 5세까지의 모든 아이들에게 양육비나 보육비를 지원하겠다"고 다짐했다. 보육이슈를 선점해 대선 정국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예산을 급하게 편성하는 과정에서 지자체의 재정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고, 보육시설이용자가 예상을 초과할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지 못한데서 문제가 불거졌다.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무상보육이 좌초된다면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한다'는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신뢰정치가 흔들리게 된다. 다급해진 새누리당 지도부가 예비비나 지방채 이자보전을 시행하라고 정부를 압박하고 나섰지만 여당과 정부 간에 줄다리기가 계속되면서 내년 1월 약속한 양육수당 정책도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 여당이 '보육서비스 중단은 없도록 한다'고 합의는 했지만 돈 줄을 쥔 기획재정부는 생각이 다르다. 계층 간 형평성, 추가수요 발생문제 등을 감안해 오는 9월 정부 예산안 확정 전에 보육지원체계를 재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현행 제도를 유지하는 한 내년에도 똑같은 문제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이른바 '복지 포퓰리즘의 덫'이다. 재벌가 아들이나 손자도 정부에서 보육비를 대주는 것이 과연 공정한 사회에 맞는가, 이들에게 주는 보육비를 줄여 양육수당을 차상위 계층에 더 주는 것이 사회정의에 맞지 않느냐는 지적들도 잇따른다.   

여권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무상보육이 위기에 처하자 민주통합당은 정부와 새누리당이 자초한 것이라며 연말 대선을 겨냥해 박 전 위원장에 대한 비판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민주통합당의 대선주자들은 무상보육확대에 모두가 한 목소리다.   

저출산 문제 해소를 위해 0~4세 보육ㆍ양육을 의무교육 개념에 준해 확대할 필요성은 물론 인정된다. 민주당도 작년 1월 무상 보육을 당론으로 채택한 바 있고, 이명박 대통령도 "0~5세 아동은 국가가 반드시 책임진다는 자세로 기획재정부 장관이 당과 협의해 예산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라"고 힘을 실어준 바 있다.

문제는 지원범위에 폭에 관한 면밀한 검토 없이 총선을 의식해 졸속 추진한 데 있다. 준비되지 않은 '국회 발(發)'무상보육은 벌써부터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공짜라는 생각에서 만 0∼2세 영아를 어린이집에 다투어 보내다 보니 실제 맞벌이 가구로서 보육이 꼭 필요한 부모는 정작 아이 맡길 곳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현상도 빚어진다.

만 0∼2세 영아의 경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집에서 키울 것을 권고한다. 생후 24개월까지의 기간에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느냐의 여부가 아이의 신뢰감 형성과 정서적 안정, 사회성 향상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선진국 부모들이 가능한 한 영아를 집에서 키우려고 노력하는 데 비해 우리의 무상보육은 정반대로 가고 있는 셈이다.   

영아를 둔 여성 취업률이 선진국수준에 훨씬 못 미치는데도 보육정책을 종일제 시설보육료 지원에 맞춘다면 질도 담보할 수 없는 보육시설에서 하루 종일 지내야 하는 아이들에게 그 피해가 돌아간다. 어려운 사람이 집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게 돕는 것이 더 나은 보육일 수도 있다. 

보육을 포함한 각종 복지제도는 도입하는 순간 매년 예산이 들어가는 영속성을 지닌다. 일단 시행되면 아무리 부작용이 많아도 수혜층의 반발로 거둬들이기가 지극히 어렵다.

복지정책 중에는 재원이 많이 들어도 보편적으로 시행해야 할 게 있고, 선별(選別) 시행이 더 적합한 것도 있다. 무상보육처럼 표를 의식해 서둘러 통과시키기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전에 충분한 논의를 거쳐 국민 다수가 공감하는 우선순위에 따라 시행해야 '지속가능한' 복지가 될 수 있다.

형편이 넉넉한 사람들까지 공짜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주는 것은 보육이 아니다. 맞벌이 부부 등 꼭 필요한 사람에게 선별지원하고, 또 최종 수혜자인 아이들이 질 높은 시설에서 건강하게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보육지원 체계를 다시 짜야한다.  

[약력] :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워싱턴 특파원. 중앙일보 워싱턴 주재 부국장, 경제담당 부국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고문 역임. 고대, 서강대, 외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조세일보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