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국회의 막판행보가 가관이다. 4월 총선을 앞두고 표심(票心)에 눈이 멀어 원칙과 상식을 팽개친 "선심(善心)입법"이 줄을 잇고 있다.

당리당략에 매몰돼 "나중 일은 알 바 아니고 통과시켜놓고 보자"는 식의 무책임한 졸속입법을 강행하는가 하면, 지역구 챙기기에 정신이 팔려 정작 중요한 법안처리는 아예 외면 내지 내팽개치는 사례도 잇따른다.

게다가 정부와의 "이익거래"로 지역구 잇속만 챙기고 입법은 회피하는 등등 "막장드라마"가 따로 없다.

국회정무위원회가 지난 9일 여야합의로 통과시킨 "부실 저축은행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조치법"은 "부산 민심 잡기에 급급한 표(票)퓰리즘의 극치"로 비난받고 있다.

이 법안은 2008년 9월 이후 영업정지된 18개 저축은행의 5000만원 이상 예금과 불완전판매로 인정된 후순위채권보유자에게 피해액의 55%가량을 보전해주도록 했다.

현재는 저축은행이 문을 닫을 경우 5000만원 초과예금자는 초과액의 30%가량을 돌려받고 후순위채보유자는 한푼도 돌려받지 못하게 돼 있다.

이들 저축은행에 5000만원 이상 돈을 맡긴 고객은 7만1754명, 예금액은 4754억원이다. 후순위채권은 1만637명이 3663억원어치를 갖고 있다.

현행 예금자보호법은 원리금을 합쳐 5000만원 이하 예금자만 보호토록 돼 있다. 그러나 특별법은 피해액의 범위에 원금은 물론 소정의 이자까지 포함시켰다.

예금자보호법의 근간을 무너뜨린 것도 모자라 이자까지 보상하는 무리수를 둔 것이다.    

보상재원은 저축은행의 분식회계로 과오납된 법인세 환급금, 감독분담금 등 자체 재원과 예보기금 특별계정으로 조성된다.

문제는 예보 특별계정 출연금이 저축은행이 아닌 은행과 보험사 고객들이 낸 돈이라는 점이다.

예금자보호기금으로 이들을 보상한다면 부실저축은행의 피해를 국민과 일반예금자에게 전가시키는 꼴이 된다. 더구나 후순위채권은 "투자자 책임주의"에 따라 과거 외환위기 때도 손실분을 메워주지 않았었다. 

특별법은 법치주의 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할 뿐 아니라 이것이 나쁜 선례가 돼 보호 한도를 초과하는 예금이나 보호대상이 아닌 채권에 대한 피해보상 요구를 부채질하고, 이로 인해 금융권역별 소비자 간 형평성이 깨지는 등 부작용도 상당할 것으로 우려된다.

정무위는 보상재원을 1027억원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 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도 있다. 18개 저축은행 외에 특별법 시행일 전에 추가로 영업정지 저축은행이 나오면 이 역시 형평성 차원에서 보상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이 조사 중인 4개 저축은행 중에는 자산 2조원을 넘는 대형사가 2곳이나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회 정무위가 이런 무리수를 마다하지 않은 것은 영업정지된 저축은행들이 몰려 있는 부산지역의 지역구 표심을 붙들자는 의원들의 선거정략 때문이다.

허태열(부산 북-강서을) 정무위원장은 이종혁(부산진을)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원안에 직접 수정안을 제시하며 법안 통과를 밀어붙였다.

허위원장은 자신의 지역구 출마를 선언한 문성근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으로부터 저축은행사태를 맡은 정무위원회 위원장으로서 한 일이 뭐가 있느냐는 공격을 받아온 처지였다.

더구나 총선을 앞두고 야권은 "낙동강전선"에 교두보를 마련하는 데, 여권은 이를 방어 차단하는 데 부산이 치열한 격전지로 떠올랐다. 민주통합당의원도 야야 합의를 핑계 삼아 법안통과에 찬성했다.

물론 저축은행사태는 정부의 정책 오류와 감독 부실이 큰 몫을 했고 정부 스스로 상당 부분 그 책임을 인정한 바 있다. 그렇다고 국회가 원칙을 어기면서까지 구제조치를 입법화하는 것은 입법권의 남용이다.     

이 법안이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금융권은 물론 정치권 내부에서도 비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고, 청와대 또한 입법화될 경우 거부권 행사를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무위원회가 저축은행 피해구제특별법과 함께 통과시킨 여신전문금융업법은 또 하나의  입법권 남용이다.

영세자영업자들의 표심을 의식해 중소가맹점에 대한 우대 수수료율을 금융위원회가 일률적으로 정하고, 카드사가 이를 따르도록 하는 무리수를 범했다.

중소가맹점에 수수료율을 깎아준 것은 정부의 권고에 따른 일종의 "업계 합의"였을 뿐 법제화할 사안은 아니다.

그럼에도 카드사와 가맹점간의 계약체결권을 정부가 제한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 침해이고 금융의 원칙과 상식에도 어긋난다. 여신금융협회는 이 법안이 본회의에서 통과될 경우 헌법소원을 벼르고 있다.

반면 일자리 창출과 국방개혁 등 국가 차원에서 통과가 시급한 법안 처리는 당리당략과 지역구 챙기기에 정신이 팔려 철저히 외면당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해온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여당의 무관심과 야당의 반대로 의결은 고사하고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의원들이 총선에 대비한 지역구 챙기기에 정신이 팔려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적극적 의지가 실종됐기 때문이다.

법안 설명을 위해 의원실을 찾아가도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헛걸음으로 끝나기 일쑤였다고 정부관계자들은 허탈해 한다.

군(軍)상부구조개편을 핵심으로 한 정부의 국방개혁안은 국방위원회 전체회의 안건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선거를 앞둔 국회의원들은 국방개혁안 통과라는 카드를 내세워 국방부로부터 군 공항 이전 등 지역구 이해를 챙기는 "이익거래"에 열중했고, 여당은 정권 말기 예비역들의 눈치를 살피며 "제 손에 피를 묻히지 않으려는" 방관자적 자세로 일관했다.

임시국회 회기는 16일까지이고, 4월 총선이후 18대 국회가 끝나는 5월 말까지는 한 달여간 시간이 있지만 이미 마음이 떠난 의원들이 이들 법안처리에 나설 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민심은 표(票)퓰리즘에서가 아니라 원칙을 지키는 굳건한 정책에서 얻어진다.

원칙과 상식을 뒤엎고, 눈앞 이해관계에 급급한 졸속 입법들은 국회의원의 수준을 의심케 한다. "선량"(選良)으로서의 양식(良識)과 노블레스 오블리주(고귀한 책임)는 찾아볼 수가 없다.

진보 성향 단체들에게서마저 "정치입법"이라는 성토가 쏟아지고, 현직 국회의장이 "돈봉투" 사건으로 사퇴하고 검찰수사를 받는 등 18대국회는 지금 "동네북" 신세다.

이런 국회의 구성원들이 다시 총선 출격채비를 갖추고 있는 마당에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새 지도부의 "개혁"과 "쇄신"이 얼마나 국민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는 실로 의문이다.

새 지도부마저 표심만 잡으면 된다는 식의 선심. 복지 공약들을 다투어 쏟아내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