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엮여 온 비상적 관행들이 이 빚어낸 참사 '세월호 침몰'. 상습 과적과 안전관리 등을 관리·감독해야 할 기관들이 의무를 다하지 않아 벌어진 이번 참사를 기화로 '관(官)피아'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인 '관피아'는 관료 출신 인사들이 공직에서 퇴직한 뒤 유관기관에 취업, 감독기관이 피감기관과 소위 '한통속'이 되면서 견제와 감시기능이 떨어지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해운업계 뿐만이 아니다. '관피아'는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거미줄 처럼 퍼져 있다. 

경제국경을 책임지고 있는 관세청도 예외가 아니다. 관세청 관료들도 관세청 퇴직 후 대거 유관기관이나 산하기관으로 자리를 옮겨, 거대한 '관(關)피아(관세청+마피아)' 세상을 구축하고 있다.

관세청은 퇴직관료들이 재취업한 기관에 수천만원에 이르는 연구용역이나 위탁사업을 맡기는 등 '일감'을 몰아줘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거센 질타를 받기도 했다.

□ 관세청 재취업, 얼마나 심각하길래… = 관세청의 대표적인 유관·산하기관은 한국관세사회, 한국관세무역개발원, 한국관세물류협회, 지식재산권보호협회(TIPA), 국제원산지정보원, 케이씨넷, 한국AEO진흥협회 등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정성호 의원이 관세청으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3년 9월까지 유관기관에 재취업한 퇴직관료들은 총 87명이었다.

한국관세무역개발원의 회장은 지난해 퇴직한 김철수 전 관세청 차장이었으며 원장은 정세화 전 광주세관장이다. 유병찬 전 울산세관장, 민수식 전 김해세관장은 개발원의 이사직을 맡고 있다. 회장과 원장, 이사 등 요직을 관세청 출신들이 사이좋게 '독식'하고 있는 셈이다. 

비상근·무보수직인 한국관세사회의 회장은 일반 관세사 출신인 한휘선 회장이 맡고 있지만 상근이면서 보수를 받고 있는 부회장직과 이사직은 피재기 전 대구세관장과 최금석 전 여수세관장이 각각 맡고 있었다. 민간단체의 '알짜배기' 요직, 소위 돈 되는 자리는 관세청 출신이 차지한 것이다. 

국제원산지정보원의 원장은 지난해 물러난 김기영 전 서울세관장이 맡고 있었으며 본부장에는 한선희 전 김포세관장, 홍형식 전 목포세관장, 전문위원은 오수교 중앙관세분석소장이 재직 중에 있다.

한국관세물류협회 이사장은 김종호 전 부산세관장이며 상근이사직은 조민호 전 인천공항세관 국장, 이승근 전 군산세관장, 김철 전 김해세관장이었다.

지난해 '일감 몰아주기'로 곤욕을 치렀던 국가관세종합정보망연합회의 회장은 김도열 전 인천공항세관장이며 연합회의 자회사인 KC NET의 대표이사는 여영수 전 인천세관장이다.

2008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27명이라는 가장 많은 퇴직자가 재취업했던 한국면세점협회의 이사장은 안웅린 전 인천공항세관장이었으며 이사직도 일선 세관의 국장 출신들이 득세하고 있다.  

□ 수백억 '일감 몰아주기'…'쏠쏠한' 유관단체  = 관세청 퇴직 관료들이 오랫동안 관세청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살려 관세행정 발전에 기여를 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이들이 재취업한 기관은 늘 특혜를 받았다는 꼬리표를 달고 산다.

정의당 박원석 의원에 따르면 관세청이 수억원대의 일감을 몰아줬다는 KC NET은 여 전 세관장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으며 2010년 회사가 설립된 지 두 달만에 '관세정보 DB정제' 사업 7억2000만원을 수주했다. 2011년에 46억3000만원, 2012년에 67억원, 지난해 55억원 등 회사 설립 3년 만에 175억원의 용역을 수주, 특혜 의혹이 불거졌다.

국제원산지정보원에는 매년 원산지정보 수집·분석 위탁사업으로 2012년 30억1000만원, 2013년 39억원을 지급했으며 지식재산권보호협회에는 지재권신고관리업무 위탁사업과 국제우편권 침해물품 검사보조 위탁사업 명목으로 매2012년과 2013년에 각각 5억원을 지급했다.

한국관세무역개발원은 '관세청 무역통계 성질별 분류체계 개편' 등의 연구용역 발주로 2012년 1억원 가까이 연구용역비를 챙겼으며 한국관세물류협회는 지난해 '보세창고 실태조사를 통한 화물관리체제 선진화방안 연구' 연구용역으로 4850만원을 챙겼다.

퇴직 관료들의 전문성을 인정해 연구용역과 위탁사업을 맡겼다고 설명하기에는 석연치 않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더구나 관세무역개발원의 경우 임직원이 290명인데 반해 임원은 10명이나 되고 임원들이 평균급여가 1억원에 달하고 있어 관세청의 인사적체를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도 지적된 바 있다.

□ 비정상적 관행, 대체 언제까지? = 관세청 퇴직 관료들의 재취업과 일감 몰아주기 관행이 가능한 것은 관세청 유관기관 대부분이 사단법인이나 재단법인, 협회 등으로 이뤄지다보니 공직자윤리법상 유관단체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지난해 국감에서는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그동안 유야무야 제대로 논의되지 않다가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난 후 안전행정부에서 부랴부랴 관련 법령 개정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령 개정은 의견을 수렴해 내용을 개정하고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될 때까지 상당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당장 올해 상반기 퇴직자들은 여전히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지적이다.

관세청 관계자 역시 "공직자윤리법상에 제재를 받지 않은 단체에 취업하는 직원들은 심사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관리하기 어려움이 있다. 법에 저촉되지 않는데 취업을 막을 수도 없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안전행정부에서 법령 개정 작업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는 공직자윤리법상에 나와있는 취업제한 기관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안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세월호 침몰사고로 '관피아'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면서 퇴직자들이 대놓고 유관단체로 자리를 옮기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관세청 유관단체의 임원들의 임기도 모두 1~2년씩 남았다는 점도 새로운 '관피아' 탄생의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관세무역개발원, 한국관세물류협회, 한국면세점협회 등 관세청 유관단체 임원들의 임기는 모두 3년이며 대부분 임기에 맞춰 교체되는데 한국관세무역개발원장인 김 회장의 경우에는 지난해 2월에 부임, 2016년 5월까지 임기가 예정돼 있다.

정 원장의 경우에는 임기가 2015년 7월까지로 예정됐으며 국가관세종합정보망연합회 김도열 회장과 KC NET 여영수 대표이사, 국제원산지정보원 김 원장 역시 지난해 부임해 당장 교체될 가능성은 없는 상태다.

한국관세사회 피 부회장과 한국면세점협회 안 이사장은 2011년 부임해 임기 3년이 가까워져오고 있어 교체요인이 있지만 현재 상황으로는 관세청 퇴직 관료가 후임으로 가기에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