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이 모인 사회에서 약속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약속을 했다면 당연히 지켜야 한다. 법률적인 측면에서 보면, 약속은 대개 계약이 되어 양쪽 당사자가 성실하게 이행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된다. 하지만 약속도 약속 나름이다. 어떤 경우는 효력이 아예 없거나 이행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생긴다.

대표적인 것이 조금 이상한 조건이 붙은 계약이다. 예를 들어 “돈을 제때 갚지 않으면 목숨을 내놓겠다”고 약속했거나, “나와 결혼하면 하늘의 별을 따주겠다”고 맹세했다면 어떨까? 법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상대에게 목숨이나 별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이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애매한 조건이 붙은 약속이 상당히 많다. 다음과 같은 사례이다. 거리 식당에 ‘맛 없으면 공짜’라는 문구가 붙어있는 경우가 있다. 이때 손님이 음식 맛을 보고 맛이 없다고 느꼈다면 밥값을 지불하지 않아도 될까?

또한, ‘타이어 전국에서 가장 싼 곳’이라는 광고를 내건 타이어 판매점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 ‘전국에서 우리 가게보다 더 싼 곳이 있다면 차액을 돌려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추가되었다고 가정하자. 이 업소에서 타이어를 구입한 뒤 더 싼 곳을 발견했다면 차액 환불을 요구할 수 있을까?

이와 관련된 법률용어가 ‘조건’이다. 법에서 얘기하는 조건은 법률행위의 효력의 발생 또는 소멸이 ‘불확실한 장래의 사실’의 실현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대학에 입학하면 노트북을 사주겠다, 취직을 하면 차를 사주겠다와 같은 약속을 떠올려보자. 이것은 법적으로 증여계약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대학 입학’이나 ‘취직’이라는 약속이 조건이 된다. 조건이 실현되면 바로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기까지 이해가 되었다면 실전 사례를 보자. 먼저, ‘맛없으면 공짜’ 부터 살펴보자. 그런 광고를 보면서 실제로 맛 없으면 돈을 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기대할 수 있다.

당연히 ‘맛 없으면 공짜’라는 약속도 조건이 붙은 계약으로 볼 수 있다. 까다로운 손님이 식사를 한 뒤 맛이 없다고 주장하면 분쟁이 생길 법도 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맛없다고 공짜라는 문구가 적혀 있어도 그것은 법적으로 유효한 조건으로 인정되기 어렵다.

조건 중에서 당사자 한 쪽의 마음에 따라 조건 성취가 결정되는 것을 수의(隨意)조건이라고 한다. 이 수의조건은, 다시 전적으로 당사자 일방의 의사에 따라 결정되는 순수 수의조건과 다른 사실 상태의 성립도 요구하는 단순수의 조건으로 나눌 수 있다.

쉽게 얘기해서, 맛이 ‘있다’, ‘없다’ 혹은 기분이 ‘좋다’, ‘나쁘다’와 같은 상태는 완전히 주관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순수수의조건에 해당한다. 이것은 당사자의 의사에 전적으로 좌우된다. 법에서는 이 경우에는 무효로 보고 있다. 이런 잣대에 따라 ‘마음이 내키면 백만원을 주겠다’, ‘형편이 되면 돈을 갚겠다’와 같은 약속에 붙은 조건도 법적으로 는 무효에 가깝다. 마음이 내키는지, 형편이 되는지는 당사자의 마음속으로만 가늠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이 쉽게 판단하거나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맛 없으면 공짜’는 달리 말하면 ‘맛이 있으면 밥값을 지불하겠다’와 같은 약속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맛이 있다’는 평가는 지극히 주관적인 조건이어서 조건의 달성여부를 따질 수 없어서 무효이다. 따라서 조건이 무효이므로 맛과 관계없이 음식 값을 지불하는 것이 타당하다. 다소 과장이 담겨 있는 문구라고 하더라도, 이 정도는 통상적인 상거래에서 허용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는 과장이다. 용인되는 광고라고 볼 수 있다. 설사, 맛이 없다고 느꼈더라도 법적으로는 돈을 안 내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순수수의조건과 관련된 판례도 살펴보자. A사는 마케팅을 위해 광고대행업체인 B사에 홍보를 의뢰했다. B사는 포털사이트 광고와 블로그 광고를 대행해주었다. 하지만 A사는 시간이 흘러도 광고비를 지급해주지 않았다. 계약서에 “광고대행업무가 적절하게 완료되었는지, 홍보효과를 달성하였는지를 판단하여 대금을 지급하고, 최종적인 결정권한은 전적으로 A사에게 속한다”고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A사는 “홍보효과가 미흡하다”며 대금지급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단지 A사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객관적인 기준을 이행한 B사의 광고용역 수행을 문제삼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최종적인 결정권한은 전적으로 A사에게 속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 당연히 무효”라고 판결했다. A사는 광고대금을 지급해야 했다.

또 다른 사건에서 법원은 ‘다른 사람에게 부동산을 매도한 후에 돈을 갚고, 만일 매도하지 않을 때는 원금이나 이자를 지급하지 않겠다’고 한 약정에서 ‘부동산을 매도한 후’ 부분도 순수수의조건으로 보았다. 채무 변제 이행시기가 온전히 주관적인 의사에 따라 결정되므로 무효라는 말이다. 부동산을 팔지 않더라도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변제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편, 수의조건 중에서도 단순수의 조건이 붙은 약속은 유효하다. 예를 들어 ‘내가 취직을 하면 월급의 절반을 지급하겠다’는 약속은 지켜야 한다.

그렇다면 ‘타이어 여기보다 싼 곳이 있으면 환불’이라는 광고는 어떨까, 역시 허용되는 과장 광고로 볼 수 있을까,

하지만 이것은 조금 다르다. “이 업소보다 싼 곳이 있으면 환불”이라는 표현은 당사자의 마음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 객관적인 외부의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얼마든지 수치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보다 싼 곳이 있으면 차액을 환불하겠다고 약속했을 경우, 같은 제품의 다른 매장 가격을 조사해서 더 싼 곳이 있으면 조건이 성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차액에 대해 환불을 요구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일 소송까지 가더라도 승소할 가능성이 있다.

정리하자면 객관적으로 달성 가능한 조건이면 유효하고, 오로지 주관적인 의사에 따라 좌우된다면 무효이다. 그러니까 맛 없으면 공짜라는 말을 믿고 공짜로 밥을 먹을 생각은 하지 않는게 좋겠다.

법률행위가 무효가 되는 대표적인 사례 몇가지를 더 소개하고자 한다. 여기에는 진의 아닌 의사표시, 강행규정에 위반된 법률행위, 사회질서에 반하는 법률행위, 불공정한 법률행위 등이 있다.

먼저, 비진의의사표시다. 쉽게 말해 진심이 아닌 의사표시를 말한다. 이것은 원칙으로는 유효하다. 예를 들어 직장인이 사직의사 없이 홧김에 사표를 쓴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때 사표 제출자가 진심이 아니었더라도 회사가 이런 의사를 모르고 사표를 수리했다면 근로관계가 종료될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다만, 상대방이 진심이 아님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는 무효가 된다. 예컨대, 평범한 직장인이 술자리에서 친구의 빚 수십억원을 대신 갚아주겠다고 약속했다고 가정하자. 이때는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그것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무효이다.

또,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행위도 무효이다. 예를 들어 내연관계를 유지하는 조건으로 돈을 주고 헤어지면 반환하기로 하는 약속이나 장기를 불법매매하기로 하는 계약 따위다. 이는 사회에서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설사 자의로 계약서를 썼더라도 무효이다.

마지막으로 불공정한 행위가 있다. 상대방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을 이용하여 현저하게 균형을 잃은 요구를 함으로써 부당한 재산적 이익을 얻는 행위를 불공정한 법률행위라고 한다. 상대가 어려운 상태임을 알고, 이를 악용하는 행위는 무효로 본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돈이 너무 급한 사람에게 빌린 돈의 몇 배에 해당하는 부동산을 받는 조건으로 급전을 빌려주었다면 이것은 당연히 효력이 없다.

참고로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무효와 취소를 구분없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무효와 취소는 어떻게 다를까? 어떠한 법률행위가 효력 부여가 거부되다는 점, 즉 법률행위의 효과를 소멸시킨다는 점에서는 둘은 같다. 하지만 무효는 누가 주장을 하지 않더라도 당연히 처음부터 효력이 없는 반면, 취소는 특정인(취소권자)이 취소권을 행사하면 비로소 효력이 없어진다는 차이가 있다.

무효란 처음부터 어떤 법률효과가 전혀 생기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1년에 수백퍼센트의 이자를 주기로 한 계약(금전소비대차)은 애초부터 ‘무효’이다. 반면, 취소는 어떤 행위가 일단 유효한 것으로 보고, 취소의 의사표시를 통해 효력을 부정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미성년자의 법률행위(법정대리인의 동의없이 물품거래를 한 경우 등)는 부모가 취소할 수 있지만, 이를 묵인하면 유효한 거래가 되는 것이다.

사회생활에서 약속을 잘 지키는 것 못지않게 유효한 약속과 효력 없는 약속을 가려내는 능력도 필요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