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부모를 고소하는 건 바람직한 일인가? 부도덕한 일인가? 죄를 지어 경찰에 쫓기는 아들을 숨겨줘야 하나, 아니면 신고해야 하나.
도덕적인 물음이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법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도덕과 현행법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충분하다. 그래서 법률도 친족 간의 범죄를 둘러싸고 벌어질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놓았다. 가족 간 범죄와 연관된 형법의 특별한 규정과 판례를 살펴보자.

아내 지갑에서 몰래 돈을 뺀 남편은 절도죄로 처벌될까?사업한다고 아버지에게 돈을 받아 유흥비로 탕진한 아들을 사기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

정답은 모두, ‘처벌할 수 없다’이다. 이유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친족이기 때문이다. 친족 간의 재산 범죄는 당사자끼리 해결하고 법은 되도록 개입하지 않는 게 좋다. 이것을 형법에서는 ‘친족상도례’라고 한다. 형법에서는 친족 간의 재산 범죄는 형을 면제하거나 고소가 있어야 기소할 수 있는 특례가 인정된다. 단, 강도, 손괴 등 물리력이 동원되는 죄는 제외한다.

형을 면제하는 대상은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 친족, 동거 가족 또는 그 배우자이다. 그 외의 친족은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 단, 반드시 법률상 친족이나 가족으로서 관계를 갖추어야 하고 사실혼 관계나 단순히 친분이 있는 정도의 사이는 해당하지 않는다. 사돈 관계도 마찬가지다.

친족상도례는 절도죄를 비롯해, 권리행사방해죄, 사기, 공갈, 횡령, 배임, 장물죄에 적용된다. 쉽게 설명하자면 부모, 자식, 부부 사이에는 돈을 훔치거나 사기를 쳐도 문제가 되지 않고, 그밖에 8촌 정도까지는 처벌해 달라는 고소가 있을 때 비로소 법이 개입한다는 말이다.

범죄자를 숨겨주면 처벌받는다. 범인 은닉, 도피죄다. 보통 도피 자금을 주거나 은신처를 제공하는 행위가 대표적이다. 법정형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하지만 친족 간에도 은닉죄를 따져 묻는다면 너무 가혹하다. 그래서 형법에는 “친족 또는 동거의 가족이 본인을 위해 죄를 범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형법 151 ②)는 조항도 있다.

친족 간에 숨겨 주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수배 중인 아들을 아버지가 숨겨 줬다는 이유로 법의 심판을 받게 한다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 조항 역시 법률상 친족 또는 동거 가족만 해당하므로 친한 친구나 애인 사이, 사실혼 관계는 해당되지 않는다.

이번엔 고소에 대해 알아보자. 부모는 자식을 고소할 수 있다. 법적으로 제한이 없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법이 막고 있다. 이 조문에 따르면 부모나 (외)조부모, 장인, 장모, 시부모를 고소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부모가 자식을 고소하는 경우나 형제간 고소, 부부간 고소는 제한 없이 가능하다.

한편 세상이 바뀐 만큼 부모도 죄를 지었다면 고소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하지만 2011년 헌법재판소는 직계존속 고소 금지 조항이 위헌이 아니라는 결정을 내렸다. 다만, 성폭력 범죄에 대해서는 특별법에 따라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도 고소할 수 있다.

이제 실제 사건을 살펴본다. 아들이 아버지 지갑을 훔쳤다면 어떻게 될까? 앞서 설명한대로 가족 간 절도죄는 처벌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어떨까?

1심과 2심 법원은 친족상도례를 적용, A씨의 형을 면제했다. A씨의 절도 행위가 죄는 될 수 있겠지만 피해자가 할아버지인 만큼 “직계가족 사이의 절도는 처벌 불가”라는 것이 판결의 요지였다. 그런데 검사가 상고하여 사건은 대법원까지 가게 됐다. 대법원은 중간에 은행이 개입된 사건인 만큼 단순 절도로 볼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누구인지 다시 한 번 따져 보자고 했다.

1, 2심은 B씨를 피해자로 봤지만 대법원은 동의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A씨가 권한 없이 현금자동지급기를 통해 자기 계좌로 이체했더라도 B씨는 손해 본 게 없다고 판단했다.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갔더라도 은행 예금반환채권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피해자가 C은행이 된다는 말이다. 이어지는 대법원의 설명.

“C은행은 B씨에 대한 예금반환 채무를 여전히 부담하면서도 D은행에 이체 자금(50만원) 결제 채무를 추가 부담함으로써 채무를 이중으로 지급할 위험에 처하게 된다.

”만일 A씨가 할아버지의 주머니에서 돈을 빼 갔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A씨는 할아버지의 예금계좌(C은행 계좌)에서 자기계좌(D은행 계좌)로 돈을 이체했다. 따라서 C은행은 D은행에 일단 돈을 지급해야 한다. 게다가 B씨 통장에서 그의 뜻과는 무관하게 돈이 잘못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므로, C은행은 다시 B씨에게 돈을 돌려줘야 한다.

여기서 의문 1가지, 손자가 몰래 사고 친 50만원에 대해 예금주인 B씨가 손해를 감수하겠다고 나서거나 B씨의 통장 관리 소홀을 문제 삼아서 C은행이 채무를 면하게 되면 B씨의 피해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대법원은 “피해가 최종적으로 B씨에게 적용될 수 있다고 하여 컴퓨터 등 사용사기죄의 피해자가 달라질 수는 없다”며 친족상도례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컴퓨터 등 사용사기죄로 볼 때 피해자는 (예금을 원래 주인인 B씨와 D은행에게 이중으로 지급해야 하는) C은행이다. 이 사건은 친족 사이의 범행이 아니다. 따라서 A씨는 유죄다. 이것이 대법원의 결론이었다.

A씨는 유죄가 확정됐다. 할아버지의 통장을 훔친 건 처벌할 수 없겠지만, 그 통장으로 계좌 이체를 했다면 절도죄가 아니라 컴퓨터 등 사용사기죄로 처벌받는다는 사실! 납득이 잘 가지 않겠지만 현실이 그렇다.

형제는 어떻게 됐을까? 법 적용이 조금 복잡하다. 형법은 범인을 숨겨주거나 도망가게 해준 사람을 범인은닉(도피)죄로 처벌한다. 범인이 있는데도 자기가 대신 처벌받기 위해 자기가 범인이라고 허위 진술한 것도 범인은닉에 해당한다. 그런데 친족 또는 동거의 가족이 본인(범죄자)을 위해 범인은닉죄를 저질렀을 때에는 가족 간의 특수성을 인정해 처벌하지 않는다. 따라서 동생 F씨는 처벌할 수가 없게 된다.

다음은 E씨다. E씨는 자기 처벌을 면하기 위해 동생에게 자백을 하도록 시켰다. 다른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게 시켰다면 그 사람은 교사죄로 처벌받는 게 당연하다. 문제는 교통사고 범인과 허위 자백을 한 사람이 형제 사이라는 점이다. 2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법으로 처벌을 받지 않는 동생에게 시킨 일이기 때문에 죄가 아니다. 둘째, 범인이 자기 죄를 숨기려고 허위 자백을 시킨 것은 명백한 범죄이고, 이것은 형제 사이라도 마찬가지다.

1, 2심 법원은 첫째 해석을 따랐다. 범인이 제3자를 끌어들였다면 몰라도, 스스로 도피하거나 형제를 이용한 행위까지 처벌하기엔 무리라는 판단이었다. 법원은 E씨에게 무면허 운전은 유죄를, 범인도피교사는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이런 판단은 심각한 의문을 던져 준다. 누군가 죄를 저질렀다고 치자. 그때마다 아버지가 아들 대신, 형이 동생 대신 죄를 뒤집어쓰겠노라고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정상적인 범죄 수사는 불가능할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대법원은 판단을 뒤집었다. 둘째 해석이 타당하다고 본 것이다. “범인이 ‘타인’에게 허위 자백을 하도록 시켜 범인도피죄를 범하게 하는 행위는 방어권 남용”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타인’이 친족ㆍ동거가족에 해당한다 해도 마찬가지”라는 해석이다. E씨는 결국 무면허에 더해 범인도피교사죄까지 처벌을 받게 됐다.

죄를 지은 사람은 자수하기보다 일단 도망가려고 한다. 당연한 반응이다. 가족 중에 범인이 있으면 일단 숨기려는 행위 역시 당연하다. 법에서도 이런 행동까지 처벌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족이나 친족을 내세워 허위 자백을 하는 방식으로 진실을 가리려는 사람까지 용납할 수는 없다는 게 이 판결의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