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수준이 높아지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국민들의 관심사가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절대 빈곤에서 탈출하고자 정부 주도의 성장전략에 따라 양적 성장을 추구했지만, 이제는 저출산ㆍ고령화의 급속한 진전과 경제 전반의 양극화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삶의 질에 대한 문제 제기가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와 더불어 저성장, 저출산ㆍ고령화에 따른 재정지출 수요의 증가와 빈부격차 확대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정책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면서 납세자들의 조세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이러한 국민들의 변화된 요구에 보다 부응하기 위해서는 현재보다 세금을 더 걷을 수밖에 없다. 더 걷은 세금을 국민들을 위해 잘 쓰겠다는 약속을 국민들이 믿고 증세에 대한 ‘총론’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더 있다. 누구로부터, 얼마나 더 걷을 것인가의 문제다. 특히 눔프(NOOMP)^１) 현상을 극복하려면 세금이 공평하게 걷히고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국민들이 일부 자산가들의 세금회피와 고소득 자영업자들의 소득탈루가 만연해 있다고 믿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누가 증세의 ‘각론’에 동의하겠는가? 그렇다고 태양왕 루이 14세 당시 재상 콜베르가 거위 털을 뽑을 때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게 살짝 뽑아야 하듯이 세금도 ‘은밀하게’ 걷어야 한다고 주장한 뒤 유명해진 ‘거위 털 뽑기’와 같은 징세론에 의지해서는 안된다. 또 버핏 세(Buffett 稅)^２)와 같은 부자들의 선의를 기대하고 기다릴 수만도 없다. 조세정책의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탈세 축소와 조세정보 공개를 통해 조세정책의 신뢰도를 높여 나가야 한다.
우선 탈세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고 탈세 축소를 위한 정책적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탈세의 축소는 세입기반을 확충하는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과세의 공평성을 개선하여 조세정책 등 정부정책의 신뢰도를 제고하고, 사회통합을 달성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우리나라 최초로 택스 갭(Tax gap) 규모를 추정해서 발표했다. 정상적인 경제활동이면서도 세정당국이 세금징수를 못하고 있는 부분을 세법상 내야 할 세금과 실제로 납부하고 있는 세금의 차이로 추정해 본 것이다. 지하경제^３) 규모의 측정에 대한 연구는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시도된 바 있지만, 주요 세목별로 세수 확충으로 직접 이어질 수 있는 부분만을 대상으로 추정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보면, 사업자의 종합소득세에 대한 관측되지 않는 과소신고 규모를 추정하기 위해서 우선 무작위로 추출한 사업자 표본에 대해 국세청으로 하여금 세무조사를 하도록 해 탈루규모를 파악한 후, 이 정보를 이용하여 전체 사업자의 탈루규모를 추정했다. 법인세는 기존에 실시했던 세무조사의 결과 자료를 활용해서, 부가가치세는 EU에서 사용한 간접추계방법을 적용해서 과학적으로 추정했다. 주요 세목의 택스 갭 규모를 합산해 보면, 2011년 신고분 기준으로 25조5천억원 ~ 26조8천억원 정도(정확하게 신고한 경우에 납부했어야 할 세액의 14.4 ~ 15.1%에 해당)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추정결과는 국세청이 지하경제 양성화 및 탈세 축소 목표를 설정하는 데 참고할 수 있을 것이며, 향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국세청과 협력해 정기적으로 택스 갭을 추정할 계획이다.

다음으로 조세부담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지금보다 더 많이 공개되어야 한다. 과연 납세자들은 본인과 다른 사람의 세금부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2015년 말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경제적 능력이 높은 사람들이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무려 82.1%의 응답자가 “그렇지 않다”고 한 반면, ‘본인의 경제적 능력과 비슷한 사람들과 비교해 본인의 세금부담 수준이 어떤가?’라는 질문에는 58.5%가 비슷한 수준이라고 응답했다. 그러나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우리 국민의 46.8%는 근로소득세를 전혀 납부하지 않았으며, 상위 10%의 급여총액이 전체 급여의 32.4%를 차지했는데 이들이 납부한 근로소득세는 전체 세수의 75.8%에 달했다. 또 우리나라 소득세 규모는 2013년에 GDP 대비 3.7% 정도로 OECD 회원국 평균치 8.8%에 비해 상당히 낮다.

이처럼 사람들의 인식, 바람직한 수준과 현실 사이에는 큰 괴리가 있기 마련이다. 비록 세금부담에 대한 것은 아니지만 외국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상위 20%의 재산비중이 59%쯤 될 것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바람직한 수준으로 32%를 선호하지만 실제 수치는 84%인 것으로 나타났다. 캐나다 국민들도 상위 재산비중이 56%로 인식하고 바람직한 수준은 30% 정도라 인식하지만 실제 수치는 68%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경우 상위 20%의 재산비중은 60% 정도인데, 과연 우리 국민들은 얼마쯤으로 알고 있고 어느 정도를 바람직한 수준으로 보고 있을까? 재산분포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인데, 훨씬 더 민감한 조세부담 분포에 대한 인식은 왜곡이 더 심할 것이다. 조세부담에 대한 변화를 도모하기 전에 보다 자세한 조세부담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어 납세자들의 조세부담에 대한 인식이 사실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납세자가 알고자 하고, 알아야 하는 사실과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세금문제를 보다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연구가 많아져야 하고, 이러한 정보와 분석결과가 널리 알려져 납세자들의 이해를 돕고 가치판단의 잣대가 되도록 하는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