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조선사와 건설사 등 수주산업을 중심으로 회계의혹이 잇달아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손실이 발생했지만 그 동안 공개하지 않다가 일시에 500억원 이상의 거액의 손실을 보고한 소위 ‘회계절 벽’에 해당하는 상장기업만 36개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회계의혹이 고의적 분식인지 또는 정상적 회계처리 범위 내의 이익조정인지에 대한 판단도 중요하겠지만, 주가하락에 따른 투자자 피해(예 : D조선사의 회계의혹 하루만의 소액투자자 손실규모 3,500억원 이상 추정)가 우리나라 자본시장을 열등기업만 남는 조지 애컬로프(2001년 노벨경제학 수상)의 ‘레몬시장(The Market for Lemon)’으로 만들 우려가 있다. 특히, 경기불황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분식회계의 유인이 더욱 커질 수 있는 상황에서 이제는 지겹도록 반복되는 분식회계를 절단할 묘수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2005년 겨울 금융감독원에서는 우리나라 회계사에 대변혁을 가져 올 ‘국제회계기준 도입’이라는 대형프로젝트를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었다. 당시 국제회계기준 도입의 정당성은 우리나라의 회계투명성을 높 여 소위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함으로써, 국내 기업이 해외로부터 저렴한 자금을 보다 원활하게 조달토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국제회계기준 도입에 대한 기대감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가령, 2007년 3월 16일 미국 월스트리드저널(WSJ)에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끝”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국제회계기준 도입이 한국의 비즈니스계를 투명하게 할 것’이라는 기사가 게재되었다. 이 기사는 미국 재무회계 교과서의 본문에 실릴 정도로, 우리나라의 국제회계기준 도입은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그런데 국제회계기준 도입을 추진했던 금융감독당국의 실무팀장으로서, 2015년 현 시점에서 느끼는 소회는 참으로 참담하다. 2006년 (주)대우의 분식회계를 떠오르게 하는 D건설사와 D조선사의 분식회계 논란이 반복되고 있으며,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2014년 국가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우리나라 회계ㆍ감사의 적정성은 조사대상 60개국 중 59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이를 두고 호사가들은 ‘회계기준은 선진국, 운영은 후진국’이라고 비꼬기도 한다. 그런데 호사가들의 그러한 지적이 이론적으로도 맞다. 회계학계의 거장인 듀크대학의 슈퍼 교수 등이 2012년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회계투명성은 자본조달비용을 감소시키지만 정보 소유자와 비소유자 간 정보비대칭으로 인해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즉, 국제회계기준 도입으로 회계투명성이 높아지더라도 정보 소유자인 기업과 비소유자인 제3자 간 정보비대칭을 감소시키지 못한다면 실물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면 “왜?” 국제회계기준의 도입이 회계투명성을 이끌지 못했을까? 그 답은 IMD의 조사대상과 질문에서 찾을 수 있다. IMD의 조사대상은 바로 자국의 기업경영인이고, 질문은 “회계ㆍ감사가 적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는가?” 이다. 우리나라 회계ㆍ감사의 적정성에 대해 회계정보 이용자나 해외 투자자에게 질문한 것이 아니다. 회계정보를 제공하는 국내 기업경영인 스스로가 그들이 제공하는 회계정보가 적정하지 않다는 것을 자인한 것이다.
이렇듯 우리나라 기업들이 회계투명성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되는 독특한 사회경제 현상들은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국내 기업들은 100%에 육박할 정도(상장사의 96%)로 재무제표의 결산일이 12월 말이다. 같이 뭉쳐 다녀야 묻어갈 수 있는데 회계투명성 측면에서 굳이 튀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해외 국가들은 결산일이 3ㆍ6ㆍ9ㆍ12월로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심리학의 ‘양떼이론(Herding theory)’이 우리나라의 회계감사시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왜?” 우리나라 기업들은 투명한 회계처리를 원하지 않을까? 라는 질문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그 해답은 지난 2013년 11월 개최된 한국회계학회 창립 40주년 심포지엄에 패널로 참석한 한 경영자의 진솔한 대답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재무최고책임자(CFO)가 있긴 하지만 단기실적과 외형성장을 중요시하는 CEO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기업 입장에서 회계투명성을 강조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고 있다.” 기업의 지배구조상 단기실적과 외형성장을 중요시 하는 현실적 상황에서 회계투명성을 강조하여 저조한 실적이나 외형감소를 사실 그대로 공개하기는 어렵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회계투명성을 높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하겠다. 그리고 이 답의 시작은 한 해외연구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 시카코대학과 펜실베니아대학의 연구진이 최근 2015년 회계ㆍ재무분야의 최고학술지에 게재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국제회계기준 도입만으로 회계투명성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엄격한 재무보고’가 가능한 국가에서만 회계투명성이 제고되었다. 이러한 연구결과에 착안하여, 회계투명성을 원하지 않는 기업을 회계투명성을 원하는 기업으로 바꾸는 다음의 제도개선안을 제안한다.
먼저, 기업 내부에서 ‘엄격한 재무보고’를 지향할 견제장치를 마련하기 위하여 지배구조의 변화가 요구된다. 그 변화의 핵심 축에는 ‘감사위원회’가 있다. 감사위원회의 회계투명성에 대한 권한을 강화하되 책임 또한 분명히 하여야 한다. 언론에 보도된 “감사위원들이 거수기 역할을 하는 동안 D조선사는 이들의 보수를 올려줬다. 감사위원 1인당 평균 보수액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8.5%,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간 10% 상승했다”는 기사를 읽는 소액투자자들의 분노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상시집행조직이 없는 비상임 중심의 감사위원회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감사위원회에 외부감사인 선임 및 보수결정권에 대한 실효적 보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이러한 감사위원회의 권한을 침해하는 경영진에 대해서는 징벌적 제재가 요구된다. 또한, 비전문가인 감사위원이 경영자의 최측근으로서 보상받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재도 상법 제399조와 제401조에서 이사가 고의 또는 과실로 위반 행위를 하거나 임무를 게을리 한 경우 회사 및 제3자(주주 등)에 대한 손해 배상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감사위원회 구성원들에 손해 배상책임뿐만 아니라 회사의 회계부정에 대해서는 명확한 징벌적 책임 부과가 요구된다. 이러한 감사위원회의 권한과 책임이 부담된다면, 현재 감사위원회를 ‘업무감사위원회’와 ‘회계감사위원회’로 이원화할 필요가 있다.

기업 내부에서 감사위원회를 통해 ‘엄격한 재무보고’를 지향하게 된다면, 이제 기업 외부에서 ‘엄격한 재무보고’를 지원할 장치를 마련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지원 장치의 축은 ‘외부감사인’이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전두환 정부시절 제정된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에 근거하여 회계투명성을 기업 당사자가 아닌 외부감사인을 대상으로 주도해 왔다. 이제는 그러한 왜곡된 방식을 정상화하여 회계투명성의 주체를 기업으로 돌리고, 외부감사인도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야 한다. 구체적으로, 외부감사인은 인지된 회계의혹 등에 대해 감사위원회에 보고하도록 의무화하되, 보고 후 해당 사항에 대한 외부감사인의 책임은 면책하여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금융위원회의 ‘외감법 전면개정안’은 시대적 요구에 부합되는 정책방안으로 평가된다.
한편, 기업 외부에서 ‘엄격한 재무보고’를 지향할 수 있는 통제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부도난 기업에 법정관리인을 파견하듯이, 회계투명성이 의심되는 기업에 대해서는 ‘법정감사위원’을 파견하는 등 기업의 감사위원회 선임권한을 제한하여야 한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자율지정제도’ (기업이 스스로 금융감독당국에 외부감사인의 지정을 요청하는 제도)도 그 대안의 하나로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즉, 투명한 회계처리를 원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한 기업에 대해서는 금융감독당국이 적극적으로 외부감사인을 지정함으로써, 엄격한 재무보고가 이루어지도록 통제하여야 한다.
그런데 투명한 회계처리를 기피하는 기업에게 외부회계감사인을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현행 자유선임제도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따라서 금융감독당국의 PATROL 기능이 강화되어, ‘조기경보시스템’과 ‘상시감시시스템’이 실효적으로 운용되기를 기대한다. 가령, 영국 등 국제회계기준을 도입한 유럽 국가들이 소송을 통해 사전예방 감독시스템을 운용하는 사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회계투명성을 저해하는 가장 고질적인 병폐 중의 대표적인 것이 재무제표를 회사가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감사해야 할 회계사가 작성하는 것이었다. 이에 그러한 관행이 철폐되도록 관련 법률이 최근 개정ㆍ시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투명한 회계처리를 원하지 않는 기업은 여전히 그러한 행태가 지속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근 회계분식 의혹에 따른 제도개선이 기업의 내부회계관리제도나 회계법인에 대한 품질감리와 같은 실질적으로는 작동되지 않는 또 하나의 사례로 치부되지 않을지 우려된다. 회계제도개선, 또 한 번의 양치기의 외침이 되지 않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