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어려웠던 시절에는 내가 잘 사는 것이 우선이었지만, 소득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주변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해졌다. 이러한 인식 변화는 사회 전반의 복지정책 수요를 증가시켰으며, 이에 따라 국가재정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수준의 복지가 필요하며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크지 않은 상황이다. 북유럽과 같은 고복지ㆍ고부담을 지향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중복지ㆍ중부담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런 한국형 복지모델에 대한 논의들은 국가복지의 지향점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납세자들의 부담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매우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필요 내지 적정 복지수준을 우선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 경우 복지지출을 충당하는 데 걸맞는 재원조달 방법이 제시되기 어렵고, 설사 제시된다 하더라도 납세자들의 동의를 받기는 더 어렵다. 참여정부 시절 발표되었던 ‘비전 2030’보고서는 복지를 포함한 국가미래를 위한 중장기 전략들을 최초로 제안했던 의미있는 노력이었지만, 동 계획을 달성하기 위해 2030년까지 추가로 필요한 1,100조원이 넘는 재원에 대한 조달방안이 함께 제시되지 못해 현실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살림살이를 지출수요에 맞추어 운영하겠다는 것은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은 방식이다. 가계의 살림살이만 보더라도 지출계획에 맞추어 가계수입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물며 나라의 살림살이를 지출에 맞추어 운영하다가는 세입이 부족해져 만성적인 재정적자나 재정파탄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과거 왕조시대에는 왕실재정에 필요한 지출규모를 먼저 결정한 후 이를 백성들에게 부담지우는 방식으로 조세정책을 운용했지만, 조세부담은 국민의 대표로 구성된 의회에서 법률로써만 부과할 수 있다는 원칙을 세우며 등장한 근대국가 이후로는 양입제출(量入制出 : 수입을 헤아려 보고 지출을 계획함)이 국가재정 운용의 금과옥조 내지 미덕이 된 것이다. 그런데 지난 봄 근로소득세 연말정산 파동을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 납세자들의 납세의식은 복지관련 논의에서 자주 등장하는 북유럽 국가들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복지지출이 늘어나는 데 대한 필요성에는 공감하는 국민이 많지만, 현실적으로 복지확대에 필요한 세부담 증가에는 매우 신중한 자세를 보이며, 계층별 세부담 구조에 대한 관심도 상당했다. 지난 6월 조선일보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함께 광복 70주년을 맞아 경제분야 국민의식을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도 복지 확대를 위한 증세에 반대하는 의견이 41.6%로 찬성(26.9%)보다 많았으며 반대비율이 2007년(33.0%)보다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앞으로 조세정책의 실현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납세자들이 동의할 수 있는 정책목표와 함께 부담증가 속도, 부담계층에 대한 엄밀한 분석과 논의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이처럼 미래 정부재정 규모와 세입수준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납세자들의 부담의사를 반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납세자들의 세금 부담의사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먼저 의견 표출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 표출의 기회를 주고 그 의견을 정책결정과정에 잘 반영할 때, 납세자들이 조정된 결정에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의견 표출의 장을 마련할 때 세금 문제와 관련해 자기 의견을 잘 표현하는 분들과 함께 침묵하는 다수의 납세자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특히 조세문제처럼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해당사자는 확실히 존재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다양한 상황에 놓인 납세자들의 의견을 보다 잘 수렴할 수 있는 논의기구 또는 논의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일찍이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복지 확대에 필요한 재원은 우선적으로 비과세와 감면 혜택 축소로 마련하고, 사회보험료를 포함한 국민부담률 인상은 중장기적으로 국민 대타협을 통해 국민들의 의사를 묻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이는 조세부담의 주체인 납세자들의 의견을 조세정책 결정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다만 이러한 국민 대타협이 침묵하는 다수 국민들의 의견을 잘 반영될 수 있도록 추진되어야 이를 통해 수립된 조세정책의 실현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국민들과 더불어 조세정책을 논의함에 있어서는 객관적 사실에 기초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많은 국민들은 법인세를 법인인 회사가 납부하기 때문에 개인들과는 큰 관계가 없거나, 있다고 하더라도 회사의 대주주 등 소수의 사람과만 관련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세금이 부과될 때 세부담의 일부 또는 전부를 다른 경제주체에게 이전시키는 소위 ‘조세의 전가’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세부담의 궁극적인 부담주체를 따지는 것이 중요하다. 법인세 부담은 일차적으로 법인의 소유자, 즉 주주의 부담으로 나타나는데 그 기업의 근로자와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에게도 전가된다. 이렇듯 조세정책 관련 논의에서 정책의 효과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편적인 사례나 편견에 사로잡힌 주장이 아니라, 객관적 자료와 분석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세부담에 대한 보다 많은 정보공개와 더불어 조세정책에 대한 객관적인 연구가 훨씬 더 많아져야 한다. 결론적으로 저출산ㆍ고령화로 인한 재정지출 수요의 증가와 저성장 등으로 인해 빈부격차 확대에 대응하기 위한 조세정책 및 복지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납세자들이 동의하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재원조달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다양한 납세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논의의 장을 마련하는 것과 함께 객관적 사실과 연구분석 결과에 기반한 건설적인 논의가 중요하다. 모두와 함께 할 수 있는 미래는 모두가 이해하고 기꺼이 따를 수 있을 때 이루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