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과세당국이라고 조세정의를 외면하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 실천력이라는 측면에서 현 국세청의 노력은 일단 돋보인다. 해외도피소득을 추적하여 과세하는 일련의 노력에 이어, 최근에는 ‘숨긴 재산 무한추적팀’까지 가동하고 있다. 국내재산을 해외로 빼돌린 장기체납자, 편법으로 부를 대물림한 고액 체납자들의 숨긴 자산을 무한 추적하여 과세권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검은 머리 외국인’의 조세회피 행위를 사전차단하기 위해, 해외펀드의 국내투자시 투자자에 대한 정보제출을 요구할 것이라고 한다. 유리지갑의 봉급생활자 입장에서는 속 시원할(?) 수 있는 소식이다.

이에 따른 과세도 늘어나고 있다. 연예인의 해외소득에 대한 과세가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였던 것에 이어, 최근에는 선박왕, 구리왕 등등 소위 ‘ㅇㅇ왕’ 시리즈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무한 추적팀의 초기 2개월간의 세금추징실적이 이미 4천억원을 넘어섰다는 언론보도도 있었다. 그런데, 과세당국이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세금추징이 많아지면서, 조세불복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덩달아 사법당국으로 넘어가기 이전의 행정부 관할의 조세심판단계에서부터 과세처분의 위법성이 판시되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조세정의를 세제차원에서 정의해본다면 ‘응능부담’원칙을 손꼽을 수 있겠지만, 세정차원에서 규정해본다면 실질과세의 원칙을 충실히 지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즉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원칙을 엄정하게 실천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소득을 찾아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공정세정을 실현한다는 명분으로 과세권자가 실질과세의 원칙을 일방적으로 판단하여 권한을 휘두를 경우, 억울한 납세자가 속출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 헌법은 조세법률주의를 채택하여, 과세요건을 법에 근거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과세요건을 명확히 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의 헌법정신은 조세정의 실천에 있어 공평성 뿐 아니라 납세자 권익도 철저히 보호하라는 취지라고 생각한다. 납세자 권익보호라는 측면에서 우리의 사법부는 더욱 강한 입장이다. 그동안 대법원의 판례를 보면, 우리 사법부는 적어도 조세법의 영역에 있어서는 확장해석이나 유추해석을 허용하고 있지 않다. 아무리 주변 상황으로 보아서 합리적이라고 판단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도 과세근거가 법령에 명시되어 있지 않으면, 과세의 적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사례1: 우리 소득세법은 사업자간 물품대가 수령시 반드시 근거를 남기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01년 당시 소득세법에서도 세금계산서, 신용카드매출전표 등 법정증비서류를 갖추지 않은 거래에 대해서는 수취액의 10%에 상당하는 가산세를 부과하도록 했었다. 근거과세를 실현하자는 취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법부는 아예 증빙이 없는 무자료거래에 대한 과세당국의 가산세 부과처분이 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취소판정을 내렸다. (대법원 2007.6.28. 선고 2005두13537판결)

#사례2: 1998년 당시 상속세및증여법에서는 제61조부터 제66조까지에 걸쳐 시가를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에 있어 상속재산 또는 증여재산을 평가하는 방법을 규정해 놓고 있었다. 다만 제66조의 경우 법문이 상속재산을 대상으로 기술되어 있었지만, 상식적으로는 증여재산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판단도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사법부는 동규정을 근거로 한 과세당국의 증여세 부과에 대해 확장해석을 허용하지 않았다. (대법원 2002.1.25, 선고 2000두10489판결)

이와 같은 엄격한 법해석은 성문법체제하에서 행정부의 자의적(?) 판단 여지를 최대한 줄이고 법운영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 궁극적으로 법적안정성을 도모한다는 사법부의 취지라고 보인다. 실제로 그간의 대법원 판례는 ‘납세자가 이익이 되는 방향’이라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합목적 해석’을 허용치 않는 것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법원이 판례에도 최근 들어 변화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국세기본법이 실질과세의 원칙에 관한 일반규정을 도입하는 방향으로 개정된 이후, 합목적적 법해석을 하는 사례가 보다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론스타의 스타타워(역삼동소재 현 강남파이낸스센터)를 둘러싼 일련의 판결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사례3: 대도시 인구집중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지방세법은 대도시지역에서 법인이 설립된지 5년 이내에 취득한 부동산에 대해 높은 등록세를 부과토록 하고 있다. 그런데, 론스타는 7년 전에 설립되어 폐업상태에 있던 법인을 먼저 인수한 다음, 이 법인으로 하여금 2001년 스타타워를 인수토록 하였다. 그 법인이 이미 폐업신고를 하였고, 그 후 7년 동안 아무런 영업실적이 없었음이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법부는 등록세 중과규정에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음을 이유로 과세처분이 부당하다고 최종 판시하였다. (대법원 2009년 5.14. 2008두 14067 판결)

#사례4: 2004년에 들어 론스타는 스타타워를 싱가폴 법인에 되팔아 상당한 양도차익을 올렸다. 그런데 그 방식이 건물을 직접 양도한 것이 아니라 스타타워를 소유한 국내의 현지법인의 주식을 양도한 것이었다. 론스타는 국내현지법인이 벨기에 국적 법인의 자회사임을 들어, 한국/벨기에간 조세협약을 근거로 하여 과세당국의 양도소득세 과세처분이 위법임을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사법부는 실질과세의 원칙을 근거로 벨기에 국적 법인을 도관회사(conduit company)로 보고 론스타를 해당 주식의 양도에 따른 양도소득의 귀속자로 인정하였다. 사법부는 비록 론스타를 개인으로 보아 양도소득세를 부과한 처분은 위법이라고 판단하였지만, 법인세의 재처분 가능성은 열어놓았다. (대법원 2012.1.27. 2010두5950 판결)

이러한 최근의 판례변화가 반드시 법적안정성을 저해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이미 영국 미국 등 관례법 국가는 물론, 독일을 포함한 많은 성문법 국가에서도 실질과세의 원칙 또는 조세회피행위를 부인하는 일반규정에 따라 합목적적 법 해석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세법률주의를 매우 엄격하게 실천해 온 우리의 경우, 납세자들의 피해의식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과세당국의 보다 철저한 과세근거 확인과 함께 보다 객관적이고 투명한 조세불복절차 운영이 요구되는 시점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