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느 일간지의 기사에 간단한 여론조사 결과가 보도되었다. 이 조사는 기사를 제공한 신 문사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첫째로 건강보험의 보장성. 즉 치료비에서 보 험이 부담하는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은 응답자의 77%나 되는 반면 건강보험 료를 인상하는 것에 찬성하는 사람의 비율은 절반을 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국민연금과 관련해 서 가입자들이 기여금을 더 내고 나중에 받는 연금혜택은 줄여야 한다는 데 반대하는 사람이 52.4% 였는데, 30대 내지 40대 연령의 응답자의 경우에는 이 비중이 70% 가까이 되는 것으로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노후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중이 76.6%나 되었다는 것이다. 정부가 무엇이든지 더 많이 해주기를 바라면서 정부에 세금은 덜 내겠다는 우리의 일반적인 심성을 너무 잘 나타내 주는 조사결과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정부가 누구이기에 우리가 세금을 적 게 내어도 더 많은 혜택을 줄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너무 잘 아는 것처럼 정부는 국민이 내는 세 금으로 운영되는 조직이다. 우리가 세금을 많이 내면 더 많은 혜택을 줄 수 있고 세금을 적게 내면 주고 싶어도 줄 것이 없게 된다. 건강보험도 마찬가지이고 연금도 마찬가지이다. 공단운영의 효율 화 등을 통해서 내는 것과 받는 것의 비율을 개선할 여지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기본적으 로 혜택이 늘어나게 하려면 상응하는 부담의 증가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 것을 다 알만 한 사람들이 왜 위와 같은 반응을 하는가? 두 가지 정도의 이유를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정직하지 못한 정치인들이나 운동가들에게 속아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정부의 돈을 배분하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정부의 돈을 자기 주머니에서 선심 쓰는 것처럼 특정 그룹이 나 특정 용도에 나주어 줄 수 있다. 혹은 돈이나 채권을 프린트 할 수 있는 권한을 이용해서 대중의 수요를 일시적으로 만족시켜 줄 수 있다. 이런 경우들은 납세자들의 부담이 잘 체감되지 않는 형태 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마치 부담이 없는 것 같은 착시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부담이 궁극적으로 국민들 자신에게 돌아오게 된다.

또 하나의 이유는 내가 부담을 안 해도 누군가가 내어 주겠지 하는 심리 때문이라고 볼 수 있 다. 예를 들어 사회보험료 조정과 관련해서 국가재정으로부터의 지원이 더 커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이런 것일 수 있다. 보험료는 내가 직접 내는 것이지만 세금은 나보다 더 부자 들이 더 많이 낼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가는 것이 유리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 들은 자신들이 중산층에 속하지 못한다고 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 이 70%가 넘는 사회는 건강하다고 말할 수 없다. 스스로 중산층이 못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 중이 절반을 훨씬 넘는다는 점에서 그렇고 또 타인에게 의존하려는 태도를 가진 사람들의 비중이 크다는 면에서도 그렇다.

특히 건강보험과 연금의 재정은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더 심각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 다. 국가가 노후문제나 건강문제를 책임진다는 것은 결국 소득이 있는 젊은 계층이 노령국민들의 생활과 건강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재정을 부담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 되면 일하는 사람의 수에 비해 부양을 받아야 할 사람들의 수가 빠르게 증가하게 된다. 한 사람이 일해서 부양해야 할 사람의 수가 많아지면 일하는 계층의 부담이 과중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태에서는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려는 의욕도 떨어지게 되므로 재정의 악순환은 더욱 깊어지게 되 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너무 분명하게 예견되는 것이고 또한 국책연구기관들에서도 여러 차례 설득력 있는 연구결과들이 발표되어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상당한 경고의 메시지가 전달되고 있다고 본 다. 그러나 전교생 무상급식의‘파괴력’을 절실하게 경험한 우리나라의 정치권에서는 보편적 복지 니 70%복지니 하면서 점점 더 복지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급식비는 사실 중산층들에게 크게 부 담이 되지 않던 것이기 때문에 무료급식이 크게 매력적인 제안이 되기 어려울 것 같은데도 막상 준 다고 하니까 싫지 않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의료비나 보육비 같이 부담이 상당히 되는 비용을 정부가 완전히 해결해 준다면 그것이야 말로 거의 모든 계층에게 거부하기 어려운 제 안이 되지 않겠는가? 거기다가 주택문제도 정부가 해결해 주고 대학 등록금도 정부가 해결해 주겠 다고 하니 얼마나 꿈같은 세상인가? 이처럼 목전의 이익에 이끌려 먼 장래를 외면하는 투표자들이 많이 있는데 정치인들이 포퓰리즘의 유혹을 거부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나라 와 국민을 생각하는 정치가라면 일반 국민들에게 과도한 복지정책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설 명하고 설득하면서 국민들이 바른 선택을 하도록 도와주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정말로 우리 자신 들의 노후와 우리 후손들이 살 나라가 건강하게 지속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 하는 정치지도자들이 아쉬운 상황이다. 최근 한 야당에서 일부 중진 및 원로 의원들이 당 지도부가 제안한 화려한 무상복지 청사진에 문제제기를 했다는 소식은 그나마 반가운 것이었다. 양극화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고 튼튼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일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 재정지출의 우선순위를 부단히 재검토하고 지출의 효율성을 늘 점검해야 한다. 세금을 어떻게 거 두는 것이 효율적인가도 항상 따져야 하고 중장기적으로 국민부담률을 높여가는 것도 필요하다. 재정건전성의 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이 강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고민하고 더 신경을 써야 할 근본적 과제는 바로 세금 밭을 가꾸는 일이다. 경제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특히 일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부양해야 할 사람은 빠르 게 많아지는 고령화 사회에서 어떻게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절박한 문제이다. 더 적은 수의 사람들이 일해서 더 많은 사람들을 부양하기 위해서는 생산성이 충분히 빠르게 향상되어야 한다. 생산성 향상의 기본전제는 인적자본투자와 저 축의 유인이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위에 기업의 건강한 경쟁과 연구개발투자가 더해져야 한다. 공짜가 만연한 세상에는 생산성에 치명적인 독이 되는 양잿물이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