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유언의 방식에 대해 알아보자. 유언은 유언자의 의사를 유족이나 제3자가 알아보기만 하면 될까? 그렇지 않다. 법은 유언에 대해 아주 엄격한 형식을 갖추라고 요구한다.
민법(제1065조 ~ 제1072조)은 법에서 정한 방식이 아니면 유언으로서 효력이 없다고 못을 박고 있다. 이를 ‘유언의 요식성’이라고 한다. 유언의 방식은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와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 등 5가지가 있다. 이 중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본인이 직접 작성하는 자필증서와 공증사무실에서 공증을 받는 공정증서이다. 이것도 법에서 정한 구체적인 방식에 따라야만 인정된다.
그중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은, 민법(제1066조 제1항)과 판례에 따르면, 유언자가 그 전문(내용)과 날짜, 주소, 성명을 모두 자필로 작성하고 날인을 해야만 효력이 있다.
이렇게 유언에 엄격한 잣대를 대는 까닭은 유언자의 진의를 명확히 하고 그로 인한 법적 분쟁과 혼란을 예방하기 위해서다(대법원 2008다1712 판결 등).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의 의사는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따라서 불분명한 유언은 그 진의를 둘러싸고 의문과 다툼이 생기면 해결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법원은 요건을 조금이라도 갖추지 못한 유언은 그것이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에 합치하더라도 무효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는 세상을 떠나는 사람 역시 생애 마지막 결정을 쉽게 내리지 말고 신중하게 하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첫 번째 사례의 A씨 유족들은 “A씨의 유언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반면, B 대학 측은 “평소 사회복지에 관심이 많던 A씨의 의사가 확인된 이상 고인의 유지를 받드는 것이 정도”라고 맞섰다.
A씨의 유언은 법으로 따지면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에 해당한다. 직접 모든 내용을 작성하여 유언의 요건을 충족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도장이 빠져 있었다. 자필증서는 유언자가 유언의 내용과 작성일, 주소, 성명을 직접 쓰고 도장까지 찍어야 완벽한 유언이 된다.
법원은 고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이 유언장이 법이 정하는 형식을 갖추지 못했다며 유언이 무효라고 보았다. 설사 유언 내용이 유언자의 의사와 일치하더라도 법정분쟁과 혼란 예방을 위해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판결서에도 유언장이 무효라고 판단한 사례가 있었다. 중병을 앓고 있던 F씨는 자신의 병간호를 하던 장녀 G씨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유언장을 작성했다. 유언장에는 “오랫동안 중환자 어미를 뒷바라지 하느라고 애 많이 써서 이 집과 00상가 가동 00호를 장녀 G에게 준다. 20××년 ○월 ○일 어미”라고 적혀 있었다. 법원은 고인의 주소가 빠져있으므로 자필증서 유언으로 효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두 번째 사례에서 C씨의 유언장은 어떨까? 우선 유언장에 도장 대신 무인(손에 인주를 묻혀서 찍은 손도장)이 찍혀 있었다. 또한, 유언장에는 상속인 2명 중에 1명에게만 상속재산을 물려주겠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있었다. 법원은 “C씨가 자필로 작성되었음이 확인된 이상, 유언장은 자필증서로서 유효하다”고 판결했다. 유언장에는 도장이 반드시 찍혀야 하지만 무인도 유효하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또한 상속인 중 1명에게 전 재산을 준다는 내용도 유언으로서 효력을 인정함이 타당하다고 보았다.
다만, 유언만으로는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된 D씨로서는 E씨를 상대로 유류분을 돌려달라는 청구를 할 수는 있다.
유류분이란 상속인을 위한 보호장치로 유언에 일종의 제한을 가하는 장치다. 고인이 유언 등으로 자신의 재산을 처분하더라도 상속재산 중에서 일정 부분까지는 법률로 상속을 보장하는 것을 말한다.
유류분은 상속개시 시 재산에 증여재산을 더하고 채무를 뺀 금액이다. 유류분은 배우자나 직계비속은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직계존속과 형제자매는 3분의 1이다. 예컨대 C씨가 채무 없이 2억원의 재산을 남기고 사망했다면, D씨는 자신의 상속분(1억원)의 절반인 5천만원에 대해 유류분의 권리를 갖는다. 따라서 E씨에게 유류분을 청구할 수 있다.

방송이나 영화에서 임종을 앞둔 아버지가 가족들을 모아놓고 유언을 남기는 장면을 보게 된다. 인간적으로 보면 고인의 유지를 받드는 것이 도리겠지만 냉정하게 보면 이런 유언은 법적으로는 효력이 없다. 이런 형태의 유언을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엄격한 절차를 따라야만 유효하다. 법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이 분명히 있다. 이왕 의미 있는 유언을 남기려면 법이 정한 절차를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산 자들 사이에 또 다른 다툼이 생길 수 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 추가 법률상식 >> 법에서 인정하는 유언 5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