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회계기준원 회계기준위원회는 국제회계기준 전면도입계획에 따라 2007년 12월 한국채택 국제회계기준을 공표하였다. 한국채택 국제회계기준은 2011년 1월 1일 이후 최초로 개시하는 회계연도부터 상장법인을 대상으로 적용되며, 2009년부터 선택적으로 적용이 가능하다. 즉, 빠르면 1년 남짓 남은 2009년부터 한국기업들이 국제회계기준을 적용한 재무제표를 작성하게 되는 것이다.

국제회계기준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공정가치를 중심으로 자산과 부채를 측정하는 것이다. 현재 국제회계기준은 공정가치를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회계기준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그 적용범위는 파생상품을 포함한 금융자산과 금융부채뿐만 아니라 유ㆍ무형자산, 투자부동산까지 이르고 있다. 국제회계기준에서는 공정가치가 투자자에게 가장 목적적합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관점을 기본으로 하여, 계속해서 공정가치의 적용을 확대하고 있다. 또한 공정가치 적용범위가 확대되면서, 근본적으로 공정가치를 어떻게 “측정”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공정가치에 대한 강조는 미국회계기준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미국회계기준위원회(이하‘FASB’)가 최근 제정한 회계기준들을 보면, 공정가치 적용을 선택 가능하게 하거나 일부 자산을 공정가치로 평가하도록 요구하는 등 공정가치 적용 항목을 점차 확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FASB는 공정가치의 정의와 측정에 대한 기준서인 SFAS 157 "Fair value measurement"를 2006년에 이미 제정하여 적용하고 상태이다.

그러나 국제회계기준과 미국회계기준에서 계속적으로 공정가치 적용을 확대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공정가치가 역사적 원가나 다른 측정방법보다 보다 목적적합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으나, 공정가치를 측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측정오류 때문에 신뢰성이 저하된다는 것이다. 그밖에도 경영자가 의도적으로 공정가치 정보를 조작하거나 투자자가 공정가치 정보를 잘못 해석하는 경우 등도 역시 문제가 발생한다. 국제회계기준의 전면도입에 따라 공정가치 정보가 광범위하게 제공되고 사용된다면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 공정 가치를 측정할 때 발생하는 측정오류가 공정가치 정보의 유용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 측정 대상 자산이나 부채에 대해서 유동성 있는 시장이 존재한다면 공정 가치는 시장가격으로 쉽게 결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장이 존재하지 않거나 사용가능한 시장정보가 적은 경우에는 공정가치 측정에 본질적으로 측정오류가 개입되게 된다. 비체계적인 오류(random error)의 경우에는 그 문제가 중요하지 않을 수 있으나, 경영자가 자신의 인센티브를 위하여 체계적으로 공정가치 측정과정에 개입하는 경우에는 공정가치 측정치와 재무제표 전체의 신뢰성이 크게 저하되게 된다. 따라서 독립적으로 공정가치 측정을 수행할 수 있는 전문적인 외부평가기관의 역할이 중요해 질 것으로 예상되며, 경영자에 의해 작성된 재무제표를 감사하는 외부감사인의 역할도 강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시장정보의 부재와 가치평가전문가의 부족이 공정가치 측정을 실무적으로 어렵게 만들 것이다. 가장 신뢰성 있고 목적적합한 공정가치 정보는 시장가격에 근거한 것이다. SFAS 157이 시장참여자 관점 및 시장중심의 공정가치 측정을 강조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이다. 그러나 한국의 시장은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 비해 덜 발달했으며 규모도 훨씬 작다. 활발한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는 시장가격을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고 공정가치 측정모형의 투입정보로 사용할 수 있는 시장정보도 제한적일 것이다. 특히 비금융자산 또는 비금융부채의 경우에는 금융자산과 같이 활발한 시장이 없고 자산마다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공정가치의 측정이 주로 관찰 불가능한 정보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측정된 공정가치의 신뢰성과 유용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또한 한국에서 가치평가 전문가와 공정가치 측정을 위한 기초 데이터의 누적이 부족하기 때문에 공정가치 측정에 실무적인 어려움이 예상된다.

셋째, 공정가치의 개념과 적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투자자가 공정가치 정보를 잘못 해석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투자부동산을 회사가 공정 가치로 측정하고 공정가치의 증가액을 이익으로 인식한 경우에, 이는 기업내부로 현금유입이 발생하는 실현된 이익이 아니다. 이는 재무제표일 현재 회사가 보유하는 투자부동산의 공정 가치를 반영하는 것일 뿐이며, 회사가 이를 가까운 미래에 처분하려는 의도를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재무제표 이용자가 이를 잘못 해석하여 기업의 매각 의도로 해석하거나 매출활동 등에 의해서 발생한 이익과 동등하게 해석한다면 회사의 가치를 잘못 평가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것이다.

넷째, 공정가치 평가가 확대되는 경우 손익계산서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 유럽의 금융기관들은 이익 변동성의 증가를 이유로 하여 국제회계기준의 도입을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이는 공정가치 평가로 인한 변동성의 증가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다섯째, 국제회계기준에서는 공정가치 적용에 대해서 여러 가지 선택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 간 비교가능성이 저하될 수 있다. 유ㆍ무형자산과 투자부동산의 공정가치 사용 허용, 특정 조건을 만족하는 금융자산과 금융부채에 대한 공정가치 측정 옵션 등이 이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같은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에도 어떤 회사는 이를 상각후원가로 측정할 수 있고, 다른 회사는 당기손익인식금융자산으로 지정하여 공정 가치로 평가할 수도 있다. 이때 재무제표 이용자가 이 회사들을 같은 기준으로 비교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과 비용이 소요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행 한국의 관련 법률이 국제회계기준과 상충하거나 원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현행 세법은 감가상각비를 회계상 반영한 경우에만 손비를 인정하고 있는데, 이는 회사들이 유형자산이나 투자부동산에 대해서 공정가치로 평가할 유인을 감소시킨다. 공정가치로 평가하는 경우 평가손익에서 감가상각을 이미 반영하기 때문에 별도로 감가상각비를 계상하지 않으며, 따라서 현행 세법상 손비로 인정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향후 관련 법률과 규제의 조정이나 개정 등이 수반되어야 국제회계기준의 원활한 적용이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공정가치의 개념과 적용의 문제가 내부에서 점진적으로 제기되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국제회계기준 전면도입이라는 사건에 의하여 갑자기 확대되어 적용되는 상황이다. 관련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이러한 갑작스런 변화로 인하여 여러 가지 부작용이 예상되고 있다. 국제회계기준 전면도입에 수반되는 문제점을 최소화하고 국제회계기준 도입을 원활히 이루기 위해서 공정 가치를 포함한 국제회계기준과 관련한 여러 연구와 논의가 필요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